K-며느리 속 터진다 전해라~
안녕하세요! 오늘은 미국 시댁에서 명절을 보낸 썰을 풀어볼까 합니다 ㅎㅎㅎ
자고로 명절이라 함은, 허리가 끊어지도록 전을 부치고 손이 부르트도록 설거지를 하는 그런 명절만을 알고 있었던 저에게...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약간 공포로 다가왔어요. 땡스기빙은 제 생일과 매년 날짜가 겹쳐서 항상 제 마음대로 생일을 보냈기 때문에, 사실 결혼하고 한 번도 명절을 보낸 적이 없었거든요. 사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안 하고 심부름을 안 시켜도 시댁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있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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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시어머니께서는 심리상담가로 40년 가까이 일하고 계세요. 그래서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 박사님께서 조언해주시는 이상적인 모습을 실제 실천하는 그런 가족입니다. 제가 인상 깊게 봤었던 에피소드 중 가정에 민주적 분위기를 도입해야 하며, 지시가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의논 및 협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물론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ㅠㅠ 저희 시댁은 너무나도 민주적이라 뭐 하나 정하는 게 없어서 한국인 며느리 속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데, 서로의 의견을 묻고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느라 뭔가 일이 진행이 안돼요 ㅠㅠ 이런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는 말만 계속 반복되고, 각자 어떤 걸 원하는지 자꾸 물어보다가, 가족 구성원 모두 나는 뭐든 괜찮다고 서로에게 선택권을 양보하니... ㅜㅜ 한국식으로 딱딱 각자 할 거 정하고, 그것만 빨리빨리 준비해서, 상 차려서 식사하고, 바로바로 뒷정리하고 하면 될 걸!!! ㅠㅠ
미국은 명절에 터키를 준비하는데요. 저는 사실 터키 요리를 먹어본 적도 몇 번 없고, 요리 방식이나 순서, 재료에 따른 맛의 차이를 전혀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요리했으면 좋겠는지, 무엇을 선호하는지, 스터핑이나 사이드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꾸 제 의견을 묻더라고요 ㅠㅠ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무거나 좋다고 했는지, 온갖 요리를 있는 대로 다 주문해 놓으셨더라고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제가 하필 땡스기빙 당일에 생일이었는데, 케이크를 뭘 살지 계속 물어보시며 사이즈며 토핑이며 뭘 좋아하는지 몇 날 며칠을 말씀하시더라고요 ㅠㅠ 그래서 케이크도 제가 직접 골랐습니다 ㅋㅋㅋㅋㅋ
사실 저는 음식이 어떻든 케이크가 어떻든 진짜 상관이 없거든요. 취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제 의견을 피력하고 싶지가 않달까요 ㅠㅠ 시댁이니까, 어른이니까, 그냥 따르는 게 편해요. 시댁에 명절을 보내고 시부모님을 도와드리러 갔으니, 그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딱딱 말씀해주시고 이거 저거 해라 시켜주시면 다 할 텐데... 자꾸 의견을 물으시고... 난 의견이 없는데... ㅜㅜ
저는 아무래도 한국식으로 생각해서 그런가, 시어머니께서 이런저런 일이 있다 하시면 제게 시키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느껴졌어요. 한국사람 8282! 시키는 건 다 하거든요. 별 불만도 이의도 질문도 없습니다. 그냥 하라면 해요.
예를 들어서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면 음식이 따뜻할 때 얼른 상을 차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던가, 영화를 보자고 하면 빨리 티비와 자리를 준비해야 한다던가, 한국식 의전처럼 착착착 일이 진행되게 말이죠. 눈치 보다가 말씀하시기 전에 착- 센스 있게 두 수를 미리 보고 착-
그런데 느려 터진 저희 남편은 뭘 해야 된다 하면 그냥 해야 되는구나 하고 가만히 있어요. 그리고 한참 한참 있다가 느릿느릿합니다 ㅠㅠ 그리고 저는 시댁이니까 조금 불편해도 참는 게 편하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굳이 굳이 거기서 저를 챙긴다고 ㅜㅜ 진짜 속 터져 가지고...
예를 들어서 시아버지께서 윌체어에 앉으셔서 티비가 시아버지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다 같이 영화 본다고 소파에 앉았는데 끝쪽에 앉은 사람(=저)이 티비가 안 보일 것 같다고 굳이 굳이 티비를 중간으로 돌리고 ㅠㅠ 나 영화 안 보고 싶어! 나 원래 소리만 들으려고 했어!! ㅠㅠ
그리고 식탁에 의자가 부족해서 제가 등받이가 없는 스툴 같은 데에 앉아있었는데 지하실에서 굳이 굳이 의자를 하나 가지고 와서 ㅠㅠ 나 스툴이 제일 편해! 그냥 구석에 조용히 있고 싶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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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 조금 오래 머물면서, 사실 생각하고 느끼는 건 대부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 있고, 당연히 누군가에게 기대를 가질 수 있죠.
하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 같아요.
가족이 잘 어울리고 화목하기를 바라는 마음
일이 뜻대로 계획대로 잘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
그럼에도 자식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려는 마음이 가장 크기 때문에, 계속 질문하시는 것 같아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너의 의견을 알고 싶어.
네 마음이 편한 만큼만 해도 충분하단다.
집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해.
아들이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자식이 되어서 대체 한 게 뭐 있냐
불효자식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죄책감을 형성하거나 잘못을 추궁하기보다는
고맙다 사랑한다
라고 진심을 전하는 게,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죠?
아무튼, 진짜 남편과 시동생들 키우시느라 시어머님께서 정말 하드캐리 하셨겠구나 ㅠㅠ 생각이 들었답니다...
시댁에서 지내면서, 시댁 가족 구성원 관계를 보면서, 남편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저는 우리 결혼생활에서 최소 5년은 노력해보리라 다짐했었는데요, 이제 마지막 1년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어머니처럼... 하드 캐리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ㅠㅠ 아무리 멱살 잡고 하드캐리 해도 따라 올 사람이나 따라오지, 안 움직이려 고집부리는 사람 붙들고 있으면 힘든 건 저일 뿐이니까요 ㅠㅠ
내년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앞으로의 관계에서 이번 시댁 방문이 어떤 의미일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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