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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n 20. 2022

미국 시댁에서는 설거지, 누가 하나요?

자유의 존중 : 시댁 방문 일화, 해쳐모여 vs 각기도생

이 일화는 결혼 전, 시부모님께 인사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내가 시댁에 처음 방문했을 때, 시부모님은 정말 깨어계신 분이라고 느껴졌다. 크리스마스 전 주였던 12월의 어느 날, 결혼 전에 시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처음으로 뵙는 거였다.


한국 드라마의 케이 시어머니의 위력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했기에 나는 조금 쫄렸다. 네이트 판이랑 사랑과 전쟁을 보고 선행 학습하고,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더랬다. 결혼에 대해, 또는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결혼 절차는 어떻게 진행될지, 상견례나 결혼식은 어떻게 하길 원하실지...


온갖 걱정을 껴안고 갔지만, 그 당시에는 모두 기우였다. 공항에서 나를 맞이한 남편과 둘이서 편하게 도심 근처를 관광하고, 4일째 되는 날, 남편의 동네에 도착했다.


처음 만나는 나를 위해 예비 시부모님께서는 집 근처 호텔을 예약해주셨고, 우리는 그곳에서 4일을 머물렀다. 그리고 정말 자유롭게 집에 가고 싶으면 가고 어디 가고 싶으면 가고 그렇게 일상에 스며들듯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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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범했던 이 시댁 방문이 나에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내 예상을 뒤엎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상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시댁에서 나는 매우 환영받았지만, 그렇다고 특별대우를 받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온다고 해서 식구들이 시간을 다 빼서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 출근할 때 출근하고, 퇴근할 때 퇴근하고, 약속이 있으면 약속을 가고.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내가 거기서 뭘 해야 한다는 큰 기대가 없었다. 나는 나의 계획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관광이든 휴식이든 동네 구경이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다. 나는 나에게 그런 자유시간(?)이 이렇게 많을 줄 모르고 뭘 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때그때 시간이 맞는 사람과 산책을 가거나, 옛날 사진 앨범을 보거나, 내가 하고 싶은 걸 말하면 되든 데로 들어주셨다. 무리하지도 않고 편하게.




아침을 차려준다거나 또는 아침을 차리라고 깨우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됐고, 배고프면 부엌에서 냉장고에서 자유롭게 내가 먹고 싶은 걸 꺼내 먹고, 쉬고 싶을 때 호텔로 들어가면 됐었다.


다만 내가 크리스마스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다 같이 함께 저녁 먹는 날과, 미리 선물 교환하는 날을 정해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물론 날짜와 시간을 사전에 물어보고, 다른 구성원들과도 조율하며,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자율적으로 참석하는 거지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날은 가족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고향에 온 친구들도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미리 연락하고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걱정했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 순간마다 긴장했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시부모님은 바쁘셨고, 나에게 뭔가를 시키시지도 바라지시도 않았다.


음식을 누구 하나가 동동거리며 차리지 않아도 됐다. 다 같이 저녁을 먹는 날, 시아버지께서 하루 종일 터키 요리를 자랑스럽게 준비해주셨고 다 같이 상 차려서 다 같이 배 터지게 먹고 뒷정리는 남자들이 해줬다. 설거지는 내가 한다고 살짝 나서긴 했는데, 시동생이 정리해서 식기세척기가 했다. 식기세척기에 넣는 방법이 있으니 자기가 한다며.


나도 뭐 하나 하기는 했다.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별로 맛이 없었고ㅜㅜ 아무도 억지로 먹는 사람도 없었다. 남의 집 음식물 쓰레기 열심히 만든 꼴 ㅜㅜ 




시부모님은 호구조사를 하지도 않으셨고, 결혼식에 대해 한마디도 없으셨다. 국제결혼이라는 생각 자체도 안 하신 듯 그냥 똑같이 대해주셨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 잘 모르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냥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시는 정도였다. 


우리 사이를 찬성한다 반대한다는 말씀도 없으시고, 그냥 너희 둘이 행복해라 잘 살아라 이런 덕담도 굳이 안 하셨다.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시누이가 많이 했다. 언니가 생겨서 좋다고 친해지고 싶다고. 


딱히 연락처를 교환하지도 않았고, 뭔가 특별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일상적으로 흘러갔다. 벌써 가족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찌어찌 결혼해서 이민 와서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지금은 퇴사한 사무실의 한 동료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리를 치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 동료 (G씨라 린다라고 부르기로)가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시어머님과 결혼식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있었나 보다. 물론 린다는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남편이 전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린다의 시댁은 한국 시댁임을 감안하더라도 굉장했다. 시할머니께서 전통혼례복을 하나하나 직접 만드시는 정성과, 하와이에 집을 턱 사주실 정도의 재력을 가졌으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주냐며 혀를 내둘렀다.


한국식으로 한국인의 눈에서 보면 지원받은 만큼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시월드 헬게이트 활짝 열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금발에 푸른 눈 미국인 역시 그렇게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옆에서 듣는 나에게도 너무나도 흥미진진했더랬다.



린다의 시어머니는 린다와 당시의 약혼자가 다른 용무로 한국에 갔어도 시댁과 일정을 함께하길 바라셨다.


결혼 준비할 때에는 청첩장은 시댁 어른들 한 분 한 분 만나서 직접 전달해드려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 시간을 모두 빼서 대접해드릴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린다는 미국에서 청첩 문화는 우편으로 청첩장을 보내고 참석여부와 손님 수를 파악하기 위해 답장을 받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결혼식 전부터 오는 손님을 파악해서 자리까지 지정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올 지 안 올지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식사까지 대접하며 결혼식에 와주시라고 부탁해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나 보다.




결혼식을 미국에서 하는 경우,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들 호텔 예약, 식사, 등 모두 계획하고, 린다에게 버스 대절해서 관광시켜줘야 하며 버스에서 먹을 간식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린다는 왜 그 손님들도 하와이에 오시는 거면 각자의 계획이 있으실 텐데 왜 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다니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먼길 오셨으니 드시고 싶으신 걸 각자 드시면 되는데 왜 꼭 식사도 하루 세끼나 단체로 모여야 하는지 말도 안 된다고. 리허설 디너나 웨딩 당일은 당연히 준비하겠지만, 그 외의 일정을 왜 자신이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은 다른 결혼식을 많이 다녔음에도 버스를 대절해서 관광을 시켜달라는 생각조차 안 했다고, 그리고 한국에 결혼식 갈 때 항상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차를 빌려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계획해서 다녔다고. 




당시 우리 부부도 다음 해 정도에 결혼식을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그 동료와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이게 말로만 듣던 문화 차이인가 했다.


왜냐하면 나도 혹시나 우리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시댁 식구들 전부 모시고 경복궁이랑 북촌 한옥마을이라도 가야 하나 몇 인승 버스를 빌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 ㅋㅋㅋㅋㅋ 버스 대절이란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건 고민의 여지가 없이 당연하게 하는 거였고, 버스 안에서 먹는 간식도 필수였다. 내가 고민한 건 버스 안에서 간식은 뭐가 좋을까 였지, 버스를 왜 대절해야 하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왜 결혼식을 하면 꼭 버스로 대절해서 손님을 모신다고 생각했을까? 




인싸였던 그녀는 미국 전역에서 열리는 친구들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당연히 비행기표도 사비로 다녀오고, 호텔이나 렌터카도 자신이 직접 예약하고, 브라이드 메이드 드레스까지 사비로 준비하는 거라고 했다. 왜냐면 자기가 간다고 한 결혼식이고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해주고 싶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도 자기가 선택해서 참석한다는 “선택권”이 있는 상황과 청첩장을 받았으니 싫어도 참석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는 상황의 차이일까? 우리는 왜 가기도 싫은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걸까? 오기도 싫을 사람에게 왜 청첩 하는 걸까? 




물론 우리 둘 다 코로나 때문에 원하는 결혼식은 못했지만 린다와의 대화는 심봉사가 눈을 뜨게 된 것처럼 정말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게 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지원해주시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으시는 나의 미국 시댁과, 모든 것을 지원해주시며 그만큼 바라시는 한국 시댁. 그냥 문화가 정서가 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닫게 된 건, 나의 시댁이 그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지해주고 계셨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는 모두 다르다. 나라별로 무 자르듯이 싹둑 문화를 나눌 수는 없다. 그러니까 어떤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믿음이 있고 어떤 시댁에서는 알아서 각자 잘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물론 시댁에 와줬으면 하는 부모님의 마음, 사랑하는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모든 부모님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자식이나 며느리/사위의 입장에서 시댁 방문이 "의무"가 되는지 "선택"이 되는지에 따라 우리가 갖게 되는 마음가짐도 다를 것 같다.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어떤 정서가 너무 강해 불가항력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도 문제일 것이다.




물론 가족끼리 똘똘 뭉쳐서 뭐든지 함께 하는 집안도 있다. 엄청 많다.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처럼. 그것도 그런 생활이 잘 맞는 사람에게는 시댁이라도 처갓댁이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참 좋겠지. 


그래도 나는 지금 시댁이 "시집왔으면 시댁 가풍을 따라야지~" "집에 왔으니 집에서 자고 가라~" 하는 부모님이 아니시라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반전은 우리 남편도 시댁도 결혼 후에 많이 바뀌었다는 것. 물론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부모님의 어떠한 의견도 존중해드리고 싶다. 진심으로. 왜냐하면 나도 나의 의견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린다의 시어머님도 (나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요구를 많이 했지만, 린다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정확히 한 것처럼. 나는 왜 이제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엄청난 생각의 전환이었다.


시부모님은 원하는 걸 표현할 권리가 있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렇기에 명절에 시댁에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실 수도 있고, 언제는 남편만 왔으면 좋겠다고 콕 집어서 나를 배제하실 수도 있고, 내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을 표현하실 수도 있다. 


나는 시어머님이 아니다. 시어머님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할 의무도 없고, 시어머님과 나를 동일시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이를 낳아도, 아이와 나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겠지. 아이든, 아이의 미래의 배우자든, 독립된 인격체임을 자각하고 존중해줘야 하겠지. 그게 얼마나 어렵던지 간에 말이다ㅠㅠ







심리상담가 미국인 시어머니의 육아법


1. 우리... 딩크 할까요?

2. 교육의 목적 : 공부 공부 공부, 맹모삼천지교 vs 호기심 천국

3. 사랑의 표현 : 금이야 옥이야, 현실적 환경 vs 정서적 충만

4. 인생의 의미 : 엄마는 왜 나를 낳아서, 이생망 vs 오래오래 행복하게

5. 자유의 존중 : 미국 시댁 방문 일화, 해쳐모여 vs 각기도생

6. 육아의 목표 : 낳실 제 괴로움, 희생과 지원 vs 존중과 자립

7. 효도의 정의 :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도리 vs 각자의 인생과 만족

8. 마음의 방향 : 인생의 모든 순간, 혼자 10걸음 vs 10명의 한걸음

9. 자아의 형성 : 너는 어떤 삶을 살까, 사랑받는 vs 사랑 주는

10. 남편은 분명 좋은 아빠가 되어줄 것이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brunch.co.kr/brunchbook/kim70064789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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