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목적 : 공부 공부 공부, 맹모삼천지교 vs 호기심 천국
학생이 학교를 가야지! 가서 공부를 안 하더라도 출석은 해야지!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 죽더라도 학교에서 죽어!
그런 거 할 시간에 공부나 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봐라! 서울대 가고도 남았겠다!
또 딴짓하니? 시키는 거나 잘해! 여전히 알아서 해줄까!
요즘도 이런 말 하시는 부모님 계실까?
우리는 왜 학교에 이렇게 목숨을 걸었을까? 대체 학교가 뭐길래? 왜 서울대를 가야 할까? 애초에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대학을 가고 싶은지, 대학 가서 뭘 할 건지, 대학을 나와서는 어떻게 살지 고민해본 적이 있나?
우리가 정답 위주의 교육을 받아서 일까,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게 쉽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인생에도 정답이, 행복에도 공식이 있다는 믿음이 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퍼져 있다.
비단 요즘 부모님 만의 얘기가 아니다.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하셨던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다닌 맹자의 어머니처럼. 자식을 위해 최고의 교육을 주려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까.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공부의 본질은 무엇일까?
학교의 기능은 무엇일까?
한국의 교육열
일제강점기의 공교육 도입 : 광복 직후 급변하는 사태 속에 근대적인 문물 습득, 공동체의 발전
한국전쟁 후의 혼란한 사회 : 교육을 통한 지위 상승 (공동체 < 개인)
박정희 정부 시기의 교육 정책 : 의무교육제, 학교 평준화, 입시위주 교육, 사교육 문제
출처 : 나무위키
한국에서 중 2까지 마친 나는 외국인학교에서 배운 교육과정이 정말 신세계였다.
그 분위기를 말로 형용할 수는 없지만... 암기 위주의 정답 찾기 학습법이 아니라 나의 개성과 의견을 표현하는 광장 같았다고나 할까?
물론 모든 수업이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이과 수업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어로도 몰랐을 듯...) 문과 과목 위주의 기억밖에 나지 않지만 내 기억에는 이랬다.
수업은 교과서가 없었다. 즉 어디부터 어디까지만 공부하면 된다는 범위가 없었다.
시험은 객관식 문제도 있었지만, 대부분 에세이 형식이었다. 내가 이해한 대로 작성하면서 핵심 단어나 개념 위주로 채점을 받았다.
문학 시간에는 정해진 목록 중에서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 세 가지를 외워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에 빚대어 나의 해석을 표현해보라고 했다.
외국어를 배울 때에도 문법이나 단어를 암기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어떤 문법을 쓰면 가장 효과적일지를 배웠다.
수학 시간에는 암산보다 계산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런 공식들이 어디에 활용되는 지를 설명 들었다. (기억이 안나는 건 마찬가지...)
사회 시간에는 인류의 전쟁에 대해 배울 때, 내가 알고 싶은 전쟁에 대해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했다.
생물 시간에는 실제 수업시간에 배웠던 심장이나 장기, 눈알을 해부해보며 실제로 만져도 봤다.
연극 시간에는 자신이 원하는 배역을 연습하거나 대본을 쓰거나,
디자인 시간에는 실제 목공 작품 등을 만들 수도 있었고,
방과 후 활동으로 악기, 연극, 운동 등 정말 다양한 예체능 수업이 있었다.
철학 시간에는 심오한 인생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기도 하고,
직업 체험을 하며 실제 회사에 실습도 나가보고,
장기 개인 프로젝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험할 수 있었고,
졸업 논문은 내가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작성하였다.
저학년의 어떤 수업에서는 역사적인 위인들에 대해 배우는 데 정말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각자 원하는 위인을 선택하고 실제 일상에서 그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느낀 감상으로 수업이 진행된다고.
헬렌 켈러에 대해 배우면, 눈을 가리고 손끝으로 세상을 만나고, 손바닥에 글씨를 써주거나, 새로운 물건을 쥐어주기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본다고.
에디슨에 대해 배우면서 계란을 품어보기도 하고, 에디슨이 궁금해했던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방식을 재연하기도 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고.
그걸 한 달 내내 한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지금 생각해보면 그 교육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알지만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자기 주도 학습을 하라고 시간을 줘도, 정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환경에 노출을 시켜줘도, 떠먹여 주는 공부에 익숙했던 나는 적응을 못했다.
나도 외국인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면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 같다. 학교는 죽어도 가야 하는 곳이라고 믿고, 학원 뺑뺑이를 다니며, 단 한 가지 정답만을 외우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집착했을 것 같다.
무엇을 배우는지, 왜 배우는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어떻게 배우고 싶은지도 모른 채 말이다.
영어 과외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일화가 있다.
유치원 다니는 한국 아이가 스펠링을 줄줄이 외우고 문법 개념도 전부 이해한다고. 주말에 뭐했어? 어디 가본 적 있어? 하면 대답을 잘 못하면서도, 과거분사가 뭐야? 그럼 바로 have pp!!! 라고 대답한다고.
유치원에서는 파닉스만 알려주고, 즉 스펠링을 안 가르쳐주고, 말하고 싶은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써보라고 한다. 스펠링은 굳이 노력해서 암기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그때 가서 배워도 괜찮다고. 그런데 유치원 입학 전부터 선행학습에 익숙한 한국 학생들 소리 나는 대로 써봐 하면 스펠링을 아는데 왜 틀리게 써요? 라고 되묻는다고.
당시의 나는 그게 문제인지 몰랐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과거분사는 have pp 였으니까. I my me mine 을 외우고 good better best 를 외우고 am was been 을 외워야 했으니까. 각 학년별로 필수 단어 숙어 암기장이 있었고, 성문 기초 영문법을 공부했으니까.
그런데 시댁에서 남편의 '메모리 박스'에 가득 쌓인 그림일기를 보며 깨달았다.
아, 과거분사를 배우는 이유는 ①번부터 ⑤번 까지 있는 보기 문장에서 틀린 걸 찾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을 말하고 싶을 때 써야 하기 때문이구나!
그런데 나는 하루 온종일 학교 학원 뺑뺑이에 딱히 나눌만한 경험이 없었다. 정답이 뭔지 알려고 급급했고 정답이 없다고 너의 의견이 정답이라 그러면 당황했다. 나는 의견이 없었으니까, 정답을 알려 달라고 그거에 나도 동의한다고 그걸 외우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은 자신만의 언어와 문자를 만들어 봤다고 한다. 그 언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하고, 더 나은 표현이나 더 쉬운 문법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기도 하면서.
만약 한국에서 어떤 아이가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한다 하면 무슨 소리를 들을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소리 듣지 않을까?
지구촌 시대에 영어는 필수다!!!! 하면서 영어학원을 다니고 이제는 중국어가 경쟁력이다!!!! 하면 중국어 학원을 다녔던 나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루에 외워야 하는 단어가 몇십 개에 단어시험 통과하지 못하면 학원에 남아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외워야 했으니까.
쓸데없는 짓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는 없을까? 아주 희박한 일말의 가능성도?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Blissymbolics 어떤 학자가 말하지 못하고, 문자를 읽지 못하는,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기도 어려운, 아동들도 소통할 수 있도록 그림 문자를 체계화해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 세계가 언어의 장벽 없이 읽고 쓸 수 있도록 상징성을 지닌 간단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는 문자이다.
입학 전에 한글을 떼고 구구단을 외고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할까? 구구단을 19단까지 외우고, 온갖 전집을 섭렵하고, 문제 은행을 다 풀어서, 그 아이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아이가 원해서 너무너무 좋아해서 스스로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아이가 아픈데도 공부할 준비가 전혀 안됐는데도 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건 아동학대가 아닐까? 아이가 꾀병을 부려도 그래 네가 원한다면 오늘은 집에서 쉬어 해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활기록부에 결석이 있으면, 개근상을 안 받으면 인생이 실패할까?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어도 시험을 못 봤다면 그 노력이 모두 헛된 일이었을까? 떨어진 등수만큼 한 대씩 체벌할 수도 있지만, 대체 무엇을 위한 체벌일까? 열심히 시험을 준비한 과정을, 그동안 간절히 노력했던 마음가짐을, 그리고 함께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과의 선의의 경쟁을... 다독여 줄 방법은 없을까?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꼭 성적이어야만 한 걸까? 그래, 옛날 세대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치자.
그렇다면 지금은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어떤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계란 품는다고 이불속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으면 답답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의 식사를 방으로 가져다주며 계란이 잘 부화하길 바란다고 응원해줄 수 있을 만큼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스펠링을 계속 틀리고 맞춤법을 잘못 써도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들어줄 수 있을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신의 세계를 펼쳐가는 아이의 반짝이는 모습만 감상할 수 있을까? 모날까 봐, 이상해 보일까 봐, 보통이랑 다를까 봐 아이의 개성을 깎아내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노래한다고 하루 종일 나가서 악기 연습하고 춤추고 다니면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보여준다거나 지역 교회나 센터에 무대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세워줄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그림을 그린다고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세탁기 돌리는데 물감이 풀려 옷을 망쳐놔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의 세계를 공부하면서 아이의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나 편하자고 획일화된 교육을 하는 미술학원에나 보내 놓고 라이드나 해주며 미술은 취미로 삼으라는 소리를 참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고 삽질한다면 시어머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질문을 하며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었을까?
아이의 마음을, 정서를, 감정을 보듬어줄 수 있을까?
심리상담가 미국인 시어머니의 육아법
2. 교육의 목적 : 공부 공부 공부, 맹모삼천지교 vs 호기심 천국
3. 사랑의 표현 : 금이야 옥이야, 현실적 환경 vs 정서적 충만
4. 인생의 의미 : 엄마는 왜 나를 낳아서, 이생망 vs 오래오래 행복하게
5. 자유의 존중 : 미국 시댁 방문 일화, 해쳐모여 vs 각기도생
6. 육아의 목표 : 낳실 제 괴로움, 희생과 지원 vs 존중과 자립
7. 효도의 정의 :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도리 vs 각자의 인생과 만족
8. 마음의 방향 : 인생의 모든 순간, 혼자 10걸음 vs 10명의 한걸음
9. 자아의 형성 : 너는 어떤 삶을 살까, 사랑받는 vs 사랑 주는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