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Jul 06. 2022

미국인 시어머니와 안부 연락 문제

효도의 정의 :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도리 vs 각자 인생과 만족

한국 사회에서는 관계가 전부이다. 포지션에 따라 나의 정체성이 지정된다. 태어나자마자 부터 생긴 나의 위치가 그 관계에서의 역할을 정의한다. 나의 마음가짐이나 행동반경, 생각과 감정의 허용치와 의무감까지. 첫 딸은 집안 살림 밑천이다? 삼대독자는 벼슬이다?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나왔을까.


그래서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보다는 장녀가 되어야 하고, 며느리가 되고, 막내 직원이 되고, 후배가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어려운 관계 시댁. 며느리로 입성하여 시부모님과 시누이를 영접하고, 동서지간에 동네 사람에 양쪽 부모님 형제자매, 사돈에 팔촌까지 신경 쓰이는 관계이다.


우리가 나고 자라면서 이런 관계에 쉽게 의문을 던지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이제까지 그래 왔기 때문. 희생이든 착취든 감정노동이든, 그냥 다들 그런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면 그걸 문제 삼는 내가 유난히 되니까. 




Photo by Anna Shvets: https://www.pexels.com/




내가 만약 한국인 시어머니를 만났다면 나도 그러려니 하며 그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한국식으로 며느라기를 자처했다. 시어머니께 전화나 문자가 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공손하게 받고 먼저 끊으실 때까지 기다렸다.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에 남편을 닦달하며 부부싸움을 했다. 


네가 중간 역할을 잘해야 우리 모두가 평화로울 거라고. 알아서 제대로 하라고. 나는 네가 그런 말 안 듣게 내가 다 막아주는데 너는 뭐 하는 거냐며. 똑같이 당해봐야 알겠냐고. 


그러다가 나 혼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어느 날, 우리는 "어머니의 날" 인사를 드리기 위해 영상통화를 하다가 중간에 내가 집을 나가버렸다. 문을 쾅 어마 무시하게 큰 소리가 나게 닫으며 (일부러 반 바람 반). 그리고 아파트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울며 우리 엄마랑 전화를 했다.




나는 당시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상황이길 바랬을까? 나는 왜 시어머니의 말씀이 듣기 싫었을까?


내가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상처인 이유는 시어머니가 나에게 잘해주실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부모님께서 나를 좋아해 주시고 환영해주시면 완벽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일 수 있겠지만, 사실 일평생을 뼈 빠지게 키운 아들과 일평생을 존재조차 몰랐던 며느리와 어떻게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어른스럽고 현명한 시부모님이라면 당신의 눈에 차지 않더라도 며느리를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이 아들이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아시겠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항상 뜻대로 되겠는가. 


시어머니는 원래 아들을 더 사랑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시어머니의 치사한 행동이 완벽하게 설명된다. 시어머님은 어쩌면 아주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시어머님께 이쁨을 받아야 하거나 점수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나도 맘이 편하다.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누가 되었든 싫어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며느리를 싫어하는데 그게 어쩌다가 내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기대치를 조정할 수 있다.


시어머니에게는 당연히 남편이 착한 편이고 내가 나쁜 편이다. 그건 당연하다. 우리 가족도 내가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가면, 우리 딸은 그럴 애가 아니에요!!! 하면서 나의 결백을 밝히도록 만반의 일을 해줄 텐데. 남편의 가족도 똑같을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세상의 이치이자 자연의 섭리이다.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 가족도 나를 더 위해준다. 그러니 아내가 남편의 행동에 상처받아서 남편을 나쁘게 몰아간다면, 남편 가족도 마찬가지로 우리 아들이 그렇게 나쁜 남편이 아니야 결백해 무죄야, 즉 우리 아들을 나쁜 사람으로 보는 며느리가 잘못이야 라고 생각하시겠지.




pexels.com




그렇게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락도 안 드리고 시댁도 가지 않았다. 생신도 명절도 각종 무슨 무슨 날도 전부 건너뛰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미국 문화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바로 표현의 자유


시어머님은 당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자유가 있다. 아니, 혐오표현도 자유로서 보장받는데 시어머니 잔소리야 당연히 화자의 자유지! 그런데 청자인 내가 관계주의에 빠져서 시어머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다고 이미 정해버려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였다. 


시어머님은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시는구나. 시어머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시어머님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끝내면 될 일이었다.




시부모를 먼저 찾아뵙지 않거나 살갑게 굴지 않는 며느리가 나쁜 년인 건 아니다. 다만 그런 며느리를 원하시는 시부모님의 마음과 며느리의 마음이 다를 뿐.


며느리에게 연락 바라고 효도 바라는 시어머니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시부모님의 마음과 며느리의 마음이 다를 뿐.


둘 다 맞고, 둘 다 옳다. 


상대를 바꾸려 든다면 끝없이 지옥이고 전쟁이다. 상대를 존중한다면 평화롭게 공존할 수는 있다. 그런 마음을 다른 곳에서 각자 위로받아야 한다.







나는 아직 자녀계획은  없지만 아기를 낳으면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는 감정이 들 것 같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불면 꺼질까 안으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키울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그만큼 사랑해주시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시부모님도 남편을 그렇게 키우셨겠지.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사위에게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하시는 것처럼 시부모님도 나에게 아들을 잘 부탁하시고 싶으셨을 것이라고 믿자. 우리 부모님께서 사위와 서로 알게 된 기간이 길지는 않는 만큼 딸인 나를 더 많이 믿어주시는 것처럼, 시부모님도 나를 믿어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거라고 믿자.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당신이 아들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리고 그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당신에게는 그게 최선이었겠지. 나도 아들이 있었다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에게 소중한 존재일 것이니까. 


시어머님 배 아파서 목숨 걸고 낳은 자식이고,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인 것도 마찬가지이고, 지금 내가 내 아기에게 느낄 법한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모성애와 희생을 쏟아가며 예쁜 것만 보이고 먹이고 키웠을 텐데.


시어머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던 아들을 정말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이 세상 누구보다 너무너무너무 사랑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좀 듣기 수월하려나? 듣기 힘든 건 마찬가지 일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시간이 계속 지나면서 내 안의 유교걸이 꿈틀거렸다. 연을 끊거나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짜게 식어버린 마음이 효심으로 충만한 것도 아닌데 섣불리 다시 연락했다가 기분만 상하는 거 아닐까 걱정도 되고. 연락을 드려야 하나, 시댁에 먼저 숙이고 가야 하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했다고 해야 하나, 뭐 어째야 하나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한국식으로 생각해서 걱정이 앞섰다. 나는 며느리 입장이니까, 시어머니께 효도하고 대접해드리고 점수(?) 따야 하는데 막장으로 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겉으로 아무리 쿨병 걸린 척 해도 마음은 쫄렸던 것. 그래서 내가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악덕 시어머니 김치 싸대기 날리는 그런 장면이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받은 문자. 나의 노파심이 무색하게도 평화로웠던 문자였다. 남편과 시부모님은 항상 나의 기대(?)를 뛰어넘으신다. 작은 우물 안 개구리에게, 천장이 막혀있다고 믿고 뛰어나가지 못했던 벼룩에게, 나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다. 




"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어떻게 연락 한 번을 안 하니!"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먼저 전화하고 주말마다 와라."

"며느리가 돼서 네가 하는 게 뭐가 있니? 네가 그러고도 자식이니?"


그러니까 이런 거친 말도 모두 마음만은 사랑이겠지.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에게도 신경을 써 줬으면 하는 복합적인 표현이겠지.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 너도 건강해라." 

"여기는 이런저런 재밌는 일이 있었다. 너도 함께였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네 소식을 들을 때마다 행복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문제라고 걱정했던 일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을 때. 그때 오히려 된통 혼나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는다. 나에게 재촉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준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시어머님의 긍정적인 반응 덕분에, 시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시간을 갖고 거리를 두니, 당신들의 진심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많은 순간,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또는 사랑하는 배우자의 가족이, 왜 꼭 강제가 돼야 하는 걸까?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남은, 진심이 생략되고 형식만 남은 건 아닐까? 결혼식, 장례식, 제사, 명절, 김장 ... 의무가 의미를 앞서갈 때 진심보다 금액이 먼저일 때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하는 걸까?


부모님은 옛날 사람이라 안 바뀐다지만, 요즘 사람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심리상담가 미국인 시어머니의 육아법


1. 우리... 딩크 할까요?

2. 교육의 목적 : 공부 공부 공부, 맹모삼천지교 vs 호기심 천국

3. 사랑의 표현 : 금이야 옥이야, 현실적 환경 vs 정서적 충만

4. 인생의 의미 : 엄마는 왜 나를 낳아서, 이생망 vs 오래오래 행복하게

5. 자유의 존중 : 미국 시댁 방문 일화, 해쳐모여 vs 각기도생

6. 육아의 목표 : 낳실 제 괴로움, 희생과 지원 vs 존중과 자립

7. 효도의 정의 :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도리 vs 각자의 인생과 만족

8. 마음의 방향 : 인생의 모든 순간, 혼자 10걸음 vs 10명의 한걸음

9. 자아의 형성 : 너는 어떤 삶을 살까, 사랑받는 vs 사랑 주는

10. 남편은 분명 좋은 아빠가 되어줄 것이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brunch.co.kr/brunchbook/kim70064789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