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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n 18. 2022

그냥 그동안 수고했다 좀 쉬어라 그래 주시면 안 돼요?

사랑의 표현 : 금이야 옥이야, 현실적 환경 vs 정서적 충만

내가 우리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있다. 바로 남편의 다정한 말투.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주 사소한 생각도 공유하고, 재밌는 일이 있었으면 나중에라도 감상을 꼭 말해주는 그런 다정함. 자잘한 일상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관찰해서 재잘재잘 이야기해주는 그런 다정함.


너는 오늘 하루 어땠어?

너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

너의 생각은 어때?


그리고 꼭 나에게도 질문해주고, 내가 이야기해주는 걸 좋아하는 다정함. 직설적이었던 내가 어렸을 적 추억을 이야기하거나 따뜻한 말이나 애정표현을 할 수 있도록 계속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그런 다정함.


오늘은 눈 화장이 바뀌었네

너의 심장 소리가 들려

발 모양이 Egyptian 모양이야


나의 사소한 특징들을 기억하고 사랑스럽게 여겨주는 그런 다정함. 나의 콤플렉스도, 자연스러운 생리현상도,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모습도 좋다고 해주는 그런 다정함.




그 다정함은... 남편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가정환경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게 이 사람의 본성이구나. 며칠 성격 죽인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시댁에서 남편이 어린이였을 때의 홈 비디오를 우연히 보게 됐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싶어 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깨우는 어머니의 모습. 


잠이 덜 깨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좋은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말해주고, 등을 쓸어주며 동요를 불러주기까지... 거의 한 시간 넘게 그렇게 아이를 깨우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물론 매일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남편은 그렇게 사랑받고 컸구나. 스스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자랐구나. 그렇게 안정적이고 자존감도 높을 수 있구나. 




그래. 연애 때는 그런 모습에 반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너무 지친다. 내가 변한 걸까? 내가 소홀해진 걸까? 사랑이 줄어든 걸까?


하루 종일 일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집에 와서 밥하고 뒷정리하고 설거지하고 피곤해서 뻗어있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퇴근하면 거의 그렇게 보낸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와서 조잘조잘거리면... 체력 방전 상태인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이라곤 영혼 없는 아~ 그래~ 그렇구나~ 나 피곤해서~ 먼저 잘게~




아... 이 패턴, 어딘가 익숙하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 하루 종일 일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집에 와서 밥하고 뒷정리하고 설거지하고 피곤해서 누워계셨던 엄마 모습 ㅎㅎ 게다가 나까지 있었으니 엄마는 정말 힘드셨겠다.


아침 일찍 출근 준비하며 아이를 유치원에 맡겨야 하는 분주했던 하루의 시작. 우리는 시간이 항상 없었다. 밥 먹기 싫어했던 나에게 물밥이라도 먹여야 했고, 빨리빨리 세수하고 옷 입고 가방 챙겨서 나가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열쇠를 목에 걸고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문 열고 들어가고 오후에는 학원을 가야 했다. 


물론 맞벌이셨던 시부모님도 바쁘셨다. 분리 불안처럼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던 큰아들은 유치원에서 계속 낮잠만 자고, 작정이라도 하듯 밤에 안 자고 부모님까지 못 자게 했다고 한다. 그때를 회상하며 나에게 웃으면서 말씀해주시던, 잠시 추억에 잠기셨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부모님은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온 에너지를 쏟아가며 키우셨는데. 







나는 차라리 우리 아이가 철없고 눈치 없고 해맑은 그런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 정서적으로 허기지고 애정과 관심을 갈망하며 타인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행동을 하는 아이보다 차라리 조금은 이기적일 줄 아는 아이 었으면. 사회적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눈치가 없었으면 좋겠고, 불특정 다수의 평가에 기죽지 않도록 자기애가 강했으면 좋겠다.


내가 맘충이 될 거라는 선전포고가 아니다.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면서 당당하게 본인의 권리를 행사할 줄 아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사랑을 충분히 차고 넘치게 받고 커서 마음이 넉넉해서 기꺼이 양보할 줄도 알고 배려할 줄도 아는 그런 아이로. 자기 자신의 고유의 가치를 알고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알며,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특별한 개성도 장점으로 살릴 수 있는 그런 아이로.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게 있다면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을 가진 그런 아이로.


그렇게 키우려면... 내가 퇴근해서도 아이의 재잘거림에 웃으면서 집중해줄 수 있을까? 출산과 육아로 인해 체력은 더 떨어졌을 텐데. 내가 보호자로서 남의 눈치를 안 보고 아이에게 최선인 결정을 해줄 수 있을까? 나에게 최선인 결정보다 아이를 우선해서 아이에게 최선인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나를 희생하고 포기하더라도 아이를 위해 기꺼이 선택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너를 믿는단다. 엄마는 우리 아가를 만날 수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엄마는 너를 응원해!!!




"그냥 그동안 수고했다 좀 쉬어라 그래 주시면 안 돼요?"




나의 눈물 버튼 장면 ㅠㅠ 결국 창희 아버지 어머니는 수고했다 좀 쉬어라 그래 주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대사까지 다 알려줬는데! 그냥 그걸 따라서 말이라도 해주지!!! ㅠㅠ 창희야 ㅠㅠ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환한 웃음을 처음으로 보인 어머니. 모든 걸 다 잃고 자식들을 둥지에서 날려 보낸 뒤에야 고생했다 한마디 하게 된 아버지.


우리는 왜, 대체 왜, 그런 표현을 못하는 걸까?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왜 전하지 못할까? 이게 우리의 진심이 아닌가? 


창희의 부모님의 표정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혀를 끌끌 차며 그 한심하다고 쳐다보는 그 눈빛. 현실 파악 좀 해라. 그게 될 것 같냐? 똑바로 살아라. 남들 하는 거 좀 봐라. 넌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


우리는 왜, 대체 왜, 아이의 꿈을 짓밟는 걸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를 막으려고 하는 걸까? 그래... 다 사랑에서 나오는 거겠지. 자식이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그런 거겠지. 부모가 보기에 힘들 것 같으니까 자식의 의지보다 자신의 판단을 믿는 거겠지...







나도 솔직히 소리소리 지르며 화내고, 울고 불고 밑바닥을 보이고, 죽일 듯이 노려보며, 오만 정 떨어져서 연락조차 끊어버리는 그런 방법밖에 몰랐다. 지난번에 네가 내 옆구리 콕콕 찔렀잖아!!!!! 언제 몇 월 며칠 몇 시에도 콕콕!!!!!!!!!! 대체 왜!! 콕콕 대냐고!!! 내가 니 옆구리 콕콕 찔르면 넌 기분이 좋냐????? 또 콕콕할 거야 안 할 거야!!!!! 콕콕하기만 해 봐!!!!!!!!


하지만 남편은 갈등 해소도 친절하게 조곤조곤해준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컵이 없으면 못 마셔. 그런데 지금 나에게는 컵이 없어. 네가 원하는 게 사이다 라면 나는 우리가 같이 힘을 합쳐서 컵을 찾았으면 좋겠어. 내가 저쪽에 가서 컵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어. 나는 사이다를 마실 수 있게 이런 노력을 할 거야. 하지만 어쩌면 그래도 컵을 못 찾을지도 몰라.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할 거고, 우리가 화해하고 더 이상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공포, 의무감으로 인해 강제된 행동에 너무나 익숙하다 보면, 타의에 의한 양보밖에 해본 적이 없다면, 자신의 선택이 뭐였는지 생각해 볼 기회도 박탈당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자라서, 그거밖에 몰라서, 해본 적이 없어서... 타인에게 호감이나 호의를 표현하는 방식도 비슷하게 가는 것 같다. 


그러나 더 이상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공포심으로 자녀를 교육하거나, 체면으로 상대를 바꾸려고 한다면 반발심이 드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공공연히 이루어졌던 체벌도 가정폭력도 더 이상 관용할 수 없다.


죽고 나서 유산 상속한다며 며느리 부려먹는 부모를 누가 진심으로 효도하고 싶을까? 군대로 공포정치를 한다면 누가 진심으로 충성할까? 배부르게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돌봐주면서 이끌어야지, 마구잡이로 숨통을 휘어잡고 조이면 누구라도 탈출하고 싶지 않을까?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타인을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서 자신이 알고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다면, 제대로 된 진심을 표현받은 적이 없다면, 그 새로운 경험에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아이와 대화할 때에도 이렇게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거나 욱해서 화를 내거나 하면 어떡하지? 체력이 부족해서 계속 지친 상태로 아이에게 100% 집중해주지 못한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그 찰나와 같을 시간, 아름답고 작고 소중한 아이의 모습...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차오르는 마음이 들 것 같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라는데. 그 마음이 대체 뭘까? 


몇 살 되지 않은 아이에게 있어서 인생에서는 엄마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가 인생 최대의 행복이 될 수도, 인생 최대의 좌절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는 절대적 위치이다. 내가 그 위치에서 이 작은 아이의 세상에 절대적 존재가 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심리상담가 미국인 시어머니의 육아법


1. 우리... 딩크 할까요?

2. 교육의 목적 : 공부 공부 공부, 맹모삼천지교 vs 호기심 천국

3. 사랑의 표현 : 금이야 옥이야, 현실적 환경 vs 정서적 충만

4. 인생의 의미 : 엄마는 왜 나를 낳아서, 이생망 vs 오래오래 행복하게

5. 자유의 존중 : 미국 시댁 방문 일화, 해쳐모여 vs 각기도생

6. 육아의 목표 : 낳실 제 괴로움, 희생과 지원 vs 존중과 자립

7. 효도의 정의 :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도리 vs 각자의 인생과 만족

8. 마음의 방향 : 인생의 모든 순간, 혼자 10걸음 vs 10명의 한걸음

9. 자아의 형성 : 너는 어떤 삶을 살까, 사랑받는 vs 사랑 주는

10. 남편은 분명 좋은 아빠가 되어줄 것이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brunch.co.kr/brunchbook/kim70064789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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