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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Feb 25. 2023

지금, 얼마나 행복하신가요?

지난주 일기 : 행복해 듀금

글쓰기는 나에게 한없이 아래로 꺼져내려 갈 때, 내 두 발 밑에 단단한 땅을 만드는 것과 같다. 힘들 때 나를 재정비해주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싶어서 글을 쓴다. 그 땅에 두 발을 딛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요즘처럼 내가 팔랑팔랑 날아다닐 때에는 생각도 팔랑팔랑 팅커벨처럼 머리 위에서 꽃가루 뿌리며 날아다녀서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요즘 그렇다. 행복하다.







우리의 발렌타인데이는 조용히 지나갔다. 남편은 내 퇴근 시간에 맞춰서 장미꽃을 사 왔고, 우리는 카드를 교환했다. 나는 선물은 기프티콘이나 상품권을 주고받는 게 편한데, 남편은 편지나 카드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매번 기념일이나 생일에 카드 하나를 정성스레 고르고 그 안에 손글씨로 마음을 써준다. 나는 편지 받는 건 정말 좋아하는데 써주는 게 아직도 어색 어색... 게다가 이날은 내가 카드를 못써가지고 ㅠㅠ 남편이 화장실 간 사이 후다닥 써서 줬다. 그렇게 잔잔하게 일상처럼 지나갔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조용히 지나갔다. 나는 원래 불평불만이 많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 장미꽃 안 좋아하는데... 저녁에 외식이라도 하지... 데이트라도 나갈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비싼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옛날에 내가 실제로 했던 말들. 남편이 아무리 본인 나름으로 노력을 해도 내 눈에 차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 지금 남편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가 보였다. 사실 남편은 똑같다. 하지만 옛날에는 불만이었을 남편의 행동들도 지금은 고마움이 먼저 느껴졌다. 그래, 이게 당신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구나. 이게 당신의 최선이고, 나에게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있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니 이해가 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니 남편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다.


내가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내가 남편에게 사랑받을 준비가 되었구나. 그래서 행복했다.




유기농 좋아하는 남편에게 컨펌 받는 장보기




며칠 전,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힘들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문자 했는데 남편은 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답장해서 역시 별 도움 안 되는 인간이라고 치부했었더랬다. 그런데 남편이 퇴근시간에 맞춰 전화해서 자기 집에 일찍 왔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아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웬일로 다정다감해진 남편이라니, 아니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그렇다. 이 남편은 내가 작년 3월 교통사고가 나서 소방차 오고 경찰차 오고 구급차 오고 난리부르스가 났어도 자.느.라. 전화를 안 받은 인간이다.


그날 밤 남편은 회사에서 문자 길게 하면 방해될까 봐 간략하게 답장했다고, 자기가 위로해주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서 전화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문자에는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안 쓰여있어서, 혹시나 나에게 큰일이 난 건 아닌지 속으로 엄청 걱정했었다고 (우리 사무실에 2주 동안 구급차 3번 출동함). 사무실 사정이 안 좋아진 건 안타깝지만 나에게 큰일이 난 게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해줬다.


남편이 이렇게 속 얘기를 해주면 좋다. 남편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행동했었구나,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남편이 지금 나에게 관심 없어서 문자를 짧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기억할 수 있게 되니까.


그러니까 그냥 우리가 다른 것이다. 나는 즉각적인 반응을 원하는데, 남편은 태생이 느릿느릿 천천히 여유가 넘친다. 위로를 해주고 싶으면 그냥 문자로 해줘도 되는데, 아니면 회사라도 전화를 해줘도 되는데, 자기만의 배려가 넘친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남편의 논리가 말도 안 된다며 이해할 수 없다며 남편과 죽기 살기로 싸웠을 때도 있었다.


나도 많이 변했다. 우리가 서로를 알고 지낸 시간이 8년인데...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그 아기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우리도 뭔가 성장은 했겠지. 우리도 뭔가 변화는 잇어야지. 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정말 수없이 많은 실망과 타협과 좌절을 겪어야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불평불만이 많았었지만, 진짜 어느 순간순간 예기치 않게 행복하다고 느껴질 때가 온다. 내가 의식적으로 행복하기 위해 뭔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정말 뜬금없이 행복하다. 가만히 있다가 남편을 떠오르면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고마움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Well, he's come a long way. Or a short way very slowly, so it feels like a long way.”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행복한 순간 동시에 불안이 엄습했다. 남편이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변하는 게 왜 두려울까? 이제까지 내가 원하던 게 그거였는데... 남편의 변화를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나는 남편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냥 남편이 변하기만을 바랐다. 남편이 문제이기 때문에 남편이 변해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완전체라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이후의 상황은 너무나도 멀어 보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남편이 변하면 나는 무엇을 바랐을까? 나는 무엇을 원했을까?

남편이 변했는데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이루었을까?


나는 두려웠다. 내가 행복해야 할까 봐. 내가 만족해야 할까 봐. 지금이 최선일까 봐.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불만이 많다. 그런데 이게 최선이라고? 나는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말로는 원한다고 했던 모든 것을 이루었거나, 또는 이루는 과정에 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남편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 이건 남편 문제 일까, 내 문제일까? 진짜 변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였나?


나는 왜 스스로를 행복하게 놔두지 못할까?










지난날의 소확행.

나는 회사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마실 수 있다. 그것도 매일. (잠깐, 이래서 내가 지난주에 행복했나?)

나는 친구들과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 그것도 아사이볼로.

나는 알바비를 탕진하기 위해 6 파운더 해산물 요리를 플렉스 할 수 있다. (게껍질과 맞서 싸운 영광의 상처)

나는 김치찌개를 끓일 때 돼지고기 두 팩을 넣는다.

나는 건물이 아닌 하늘을 본다. (?)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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