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Apr 30. 2022

하와이에서 구급차가 출동하자마자 내가 한 첫 마디

"저 보험 있어요!!!!!"

날라가는 순간들이 아쉬워 적어보는 근황 정리




3월 1일 경미한 사고를 당했다. 쓰레기통을 옮기는 작은 트럭에 살짝 닿아 넘어졌다. 정말 느낌도 안나게 살짝 닿았는데도 그 힘에 밀렸나보다. 확실히 차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ㅠㅠ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사실 그렇게 많이 다치진 않았는데 놀라서 몸도 움직여지지도 않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원래 엄청 빠릿빠릿한 사람이었는데! 정신 놓고 다니다가 사고가 나다니! 빠져가지고 길도 제대로 못 다닌단 말인가!!


주위에서 뭐라고 뭐라고 하시며 도와주려 했는데 그것도 들리지 않았다. 운전했던 분께서 911에 신고해주셨다. 바로 옆이 소방서라 그런지 엄청 큰 소방차가 제일 먼저 왔고, 그 다음 경찰차가, 그 다음 구급차가 왔다. 헉 이정도 스케일의 사고는 아니었는데 ㅠㅠㅠ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사고 후속처리를 정말 신속하게 잘 해주신 느낌. 고객(?)만족도 최상


이때 나는 필사적으로 첫 마디를 했다. "저 보험 있어요!!!!!" ㅜㅜ




소방관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들을 치료해주셨고, 우리가 어디 있는지 오늘이 몇 년도인지 아냐고 간단한 확인 질문을 주셨다. 경찰은 사고 현장 사진을 찍고 내 직원증 사진을 찍어가면서 사건번호와 경찰관의 성함이 적힌 카드를 나에게 주셨다. 구급대원은 놀랐겠다고 괜찮다고 나를 위로해주시며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우리집까지의 거리는... 세 블럭이었다...;;


너무 고급 인력이신데 시간낭비한거 아닌가 싶다가도 혼자였는데 이렇게나 전문적인 사후처리를 받으니 굉장히 안심되기도 하고... 정말 내가 정신만 똑띠 차리고 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왜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당시 전화를 받지 않았던 남편에게 화가 났다가도 사실 내가 화가 나는 건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나라서 더 분하고, 찰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인생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구나 싶기도 했다.




내가 정신줄 놓고 다닌 썰을 풀자면 올해 초로 거슬러올라간다. 새해 맞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설탕, 알코올, 카페인을 끊기로 다짐한 나. 마침 믹스커피도 똑 떨어졌겠다,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야무지게 들락날락 거렸던 한인마트도 문을 닫았겠다, 타이밍이 이렇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며칠동안 커피를 안마시면서 겪은 금단현상으로는 양쪽 눈 가득히 쌓이는 졸림과 멈춰버린 생각이 있었다. 진짜 눈도 안 떠지고 행동도 굼떠지고 머리도 안 돌아가는... 가끔 수혈해주는 카페인에 정신이 반짝 드는 날도 있어서 커피의 위력을 실시간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사람이 느릿느릿 덤벙덤벙 사소한 실수 연발까지 ㅠㅠ 정말 내가 멍청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질타받았을 상황에서도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예 문제조차 되지도 않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나도 실수를 하는 입장일 때도 있고 수용해야 하는 입장일 때도 있으니, 어떤 입장에서든 정말 진심을 다해 마음을 넓게 써야 한다는 것을 또 깨달았다.




하와이는 미국에서도 복지가 굉장히 잘 되어있다. 모든 소수자를 환영하는 분위기. 알로하 정신. 체감상 인종차별도 적고, 이민자,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 아이, 동물까지 다양한 사람들 모두에게 친절하다.


느린 사람을 기다려줄 줄 알고, 다른 사람을 인정할 줄 알고, 실수도 잘못도 품어줄 줄 아는 것 같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동권이나 다양한 아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해주고, 느리더라도 함께 가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느끼기에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관대한 사람들인 것 같다. 


최소한 사람이 살게 해주는 정책이 많다. 노숙자나 마약중독자, 또는 취약계층 주민이나 아동들에게도 복지가 전달되도록. 또는 자살방지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전화만 걸어도 사회복지사가 30분 이내에 출동해주기도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진심인 편.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성격 급한 사람들이나 너무 뛰어나신 분들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본토로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도 현실이다. 


어떤 사람은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 성장 단계에 맞춰 큰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병원이 비상이자, 그런 아이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닌 이상 정기적으로 필수인 수술조차 진행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본토의 큰 병원으로 갈 수 있게는 해줬다고 하지만... 그래서 결국 미국에서 평생을 일궈온 모든 삶과 경력을 뒤로 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코뼈가 부러졌는데도 숨은 쉴 수 있다고 수술을 안해줘서 본국까지 비행기타고 가서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결국 본토로 이사를 결정하시게 됐다고...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말이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긴 하지만 더 나은 삶까지는 무리인 것일까?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호놀룰루 한복판, 평화로운 줄만 알았던 우리 동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