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Jun 13. 2022

미국은 왜 아직도 아날로그로 일할까?

외노자 뇌피셜임을 감안해주세요

실리콘 밸리, 4차 산업, 디지털 시대, 최첨단 기술의 발전! 전산화와 자동화로 인해 사무환경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최첨단의 끝을 달리는 미국의 행정 업무는 조금 다른 이야기 같습니다.


이민국에서 비자 신청하고 받는데만 1년 영주권 신청하고 받는데도 1년, 국세청에서 세금보고 번호를 받는 데 네 달, 보건부에서 결혼 증명서 사본 신청하고 받는 데 두 달, 교통부에서 운전면허 신청하고 받는 데 한 달, 사회보장국에서 소셜 넘버 받는데 한 달...


미국 내에서 행정업무를 하려면 당연히 모두 직접 방문해야 했고, 시간을 예약하고 가도!! 한두 시간 대기는 기본입니다. 심지어 문화센터에서 프로그램 신청하고 싶어도 직접 방문해서 신청자 명단에 수기로 이름을 써야 합니다 ^^;


그런데 저도 여기서 일하다 보니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써보는 빨리빨리 민족의 후손,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시민, 미국 이민 4년 차, 외노자 3년 차의 뇌피셜입니다. : )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가 느꼈던 양국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우리나라는 상향평준화가 되어 있다면 이곳은 기능 중심적인 사회라는 점입니다. 그 안에는 국민성의 차이도 있겠죠.




우리나라는 작은 땅에 인구 밀집도 높고 사계절이 뚜렷하고, 공동체 문화가 강해요. 그래서 어떤 유행이 만들어지면 빠르게 확산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유행을 즐길 수 있도록 접근성도 좋고, 변화에 민감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신문물이 들어오면 신속하게 많은 부분에서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전국적으로 상향평준화가 되죠. 키오스크, 스마트폰, 어플, QR코드, 인터넷 뱅킹, 온라인 민원, 통합 행정 등등.


한국은 참 살기 좋은 환경이에요. 치안이 좋고, 수준 높은 공교육과 정부지원까지 상향평준화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어릴 때부터 모든 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되고, 영어교육이 교육과정에 포함되고, 심지어 요즘엔 코딩도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테크놀로지의 발전, 얼리어덥터, 디지털 세대, 케이팝 문화, 이동통신 강국! 우리나라가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더 빠르게 적응하고 심지어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한 결과일 거예요.


그러다 보니, 트렌드를 빨리 따라잡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생길 수가 있겠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사각지대가 있게 마련이고요.




미국은 변화에 보수적입니다. 물론 사기업은 전 세계에서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는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 행정 업무는 모든 사람에게 접근 가능해야 하며, 어느 한 사람이라도 차별받으면 안 되죠.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미국의 이념이니까요.


예를 들어, 전기와 전자제품, 전화, 컴퓨터, 자동차 등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종교/문화적 공동체도 있고, 정부형태나 강제적인 권력, 모든 형태의 계급제와 지배 사회를 거부하는 단체도 있고, 개인적인 신념이나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도청이나 감청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죠.


경제적으로 소외되거나,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영어에 서툴거나, 연세가 많으셔서 이런 기술의 발전이 상용화되기 전의 생활습관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모두 공존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운영이 되니, 유지되고 있는 상태 같아요 ㅎㅎ




여러분이라면, 어떤 상황을 원하시나요?
상향평준화 <> 소외계층

균등한 기회 <> 하향평준화







내 개인정보는 소중해!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많아요. 게다가 개인정보라고 본인의 핸드폰 번호나 이메일을 알려주기 싫어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더라고요.


또는 어떤 회사에서는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는 무조건 고객에게만 직접 알려주는 곳도 있어요. 네트워크 보안이 철저하지 못해 사이버 테러나 스팸 공격을 받을까 봐 그렇다고 해요. 이메일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상황인 거죠.


심지어 돈을 송부하기 위한 계좌번호 입력도 굉장히 꺼립니다. 그래서 월급이나 수당을 여전히 체크로 받기로 선택하는 사람도 많아요.




한국에서는 핸드폰을 개통하려면 본인인증이 필요하잖아요. 심지어 알뜰폰이나 선불폰을 사용할 때에도 전부 실명으로 밖에 가입되지 않아요. 외국인의 경우 핸드폰을 개통할 때 출입국 내역 조회를 하고, 통장을 개설할 때에도 비자 확인을 필수로 해야 합니다.

 

그 확인 작업의 일환으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회원가입 약관에 껴있는 위치추적이나 개인정보 열람 등에 활용돼요. 실제로 코로나 밀접접촉자에게 신속히 문자로 안내해줄 수 있었던 것도 위치추적과 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한 것이니까요.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이메일 주소도 알려주기 싫어하는데, 위치추적을 하고 그 내역을 공개하다니... 실제로 한국에서도 의도치 않게 특정인을 아웃팅 한 사건이나 불륜 등의 관계가 공개된 사건 등 사건사고가 많았죠. 이곳에서는 밀접 접촉자 추적도 확진자가 기억나는 대로, 연락처를 아는 대로만 조금은 허술하게 진행됐었어요.




편리성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와, 사생활을 중시하는 미국의 문화차이겠죠.


카드 결제 시 대리서명을 하는 것도 같은 시간이라도 더 많은 손님께 계산을 도와드려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카드 결제 시 카드 뒷면의 서명을 하나하나 확인하거나, 체크 사용 시 체크의 서명과 신분증이나 여권의 서명을 하나하나 대조하는 것도 손님이 카드 도용을 당하지 않게 확인하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아이디나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해서 전산으로 공문 발송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대리로 클릭했다면 불의의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지를 피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종이 서류로 인쇄해서 손글씨로 서명해서 공문 발송한다면 시간과 비용이 추가적으로 들겠지만, 담당 업무의 일처리 과정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도 있겠죠.







미국은 왜 아직도 우편으로 업무를 처리하나요?


그래서 그럴까요? 뭐든지 우편으로... 진짜 문자 한 통이면 될 만한 안내도 꼭 종이로 인쇄해서 우편으로 발송합니다 ㅜㅜ 땅이 커서 직접 방문은 힘든 경우도 많으니 그래도 우편으로라도 알려줘서 다행이랄까요. 아직도 생각나는 게 취준 때 서류 탈락 안내를 9주가 지난 어느 날 우편으로 받았어요 엉엉...


저도 여기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해요. 이곳은 업무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고, 한 부서에서 모든 업무를 관리하지 않아서, 당사자에게 직접 안내해주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집행유예로 벌금을 납부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면, 벌금 관련 정보를 입력하는 곳이 따로 있고, 수납하는 곳이 따로 있고, 벌금을 냈다고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는 곳이 따로 있고, 재판 관련 행정 절차를 문의할 곳이 따로 있고, 뭐 신청할 곳이 따로, 뭐 출석할 곳이 따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판이 끝나고 범죄기록을 관리하는 곳까지 전부다 따로따로인 거죠.


그래서 우리 사무실에서 이런 처리를 하였으니 당신이 앞으로 이렇게 진행해야 한다. 그러니 4주 이내에 어떠 어떤 안내를 받지 못하면 연락하시오. 이렇게 편지를 보내요. 차라리 그냥 이런 거 보낼 시간에 그 안내를 직접 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편지 보낸 부서와 안내를 보낼 부서가 달라서 각자 보내는 거죠.




저희 노조 대표 선거 때 받은 Secret 선거용지입니다 ㅎㅎ 대통령 선거 때 부재자 투표도 우편으로 해요.




그래서 주소 설정을 잘해놔야 해요. 한국처럼 전입신고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이 주소가 실제 내가 살고 있는 주소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해요;;


이 주소로 온 수취인이 내 이름으로 된 우편으로 증명해요. 공공기관, 전기세, 수도세, 은행 등의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발송한 문서들을 인정해줘요. 월세 계약서 하나 만으로는 어렵고, 실제 산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게, 우리가 이사를 갈 수도 있고 집을 비울 수도 있고 우편이 오배송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럴 땐 어떡하나요?


우편 안내는 느려서 불편한 거지, 일이 마비되는 건 아니긴 해요. 그러니까... 배송이 잘못되면 민원인들이 직접 나서는 거죠... 저도 중요한 서류를 못 받아서 계속 문의 넣고 했던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서류 하나 주는데 4주~17주 걸린다고 안내해주고, 중간에 문의하면 17주 안됐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17주가 지나면 드디어 담당자를 연결해주는데, 그때 또 주소 알려달라 해서 우편으로 안내문을 발송해주시는...




기계를 불신해서, 또는 기계를 다룰 실력이 없어서,

정년이 없기에 나이 많은 직원들도 업무가 가능하도록,

각 개인의 출신 배경이 천차만별로 다르기에 평등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직원의 근로시간을 준수해야 하기에 업무량이 늘어나면 일처리가 늦어지는 건 감수해야 하니,


전산화했다가 오류 나면 한국처럼 빨리빨리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이라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사람이 일일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느리지만... 오류가 있으면 있는 데로 또 사람이 고쳐줍니다.




사람이 확인해야 한다 <> 사람이 해서 더 실수가 생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국 우체국은 그래도 정부기관 중에서도 신뢰도 높은 곳이에요. 요즘에는 배송도 이전보다 빨라지고, 그날 발송받을 우편을 미리 볼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한답니다.


USPS Informed Delivery




느리더라도 조금은 여유를 갖고...


저희 사무실은 아직도 타자기를 씁니다 ^^;




제가 이곳으로 이민 와서 살아보니 막상 그렇게 생각보다 느리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한국의 빠른 행정에 익숙해서 상대적으로 이곳이 느리다고 느껴졌을 뿐, 이곳은 이곳의 속도대로 꾸준히 가고 있었어요.





한국의 빠른 행정처리가 감동일 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작용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부작용이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느리더라도 잘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의 일사천리 행정업무 진행방식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국제 미아가 된 일이 있었어요. 2011년도에 국적법이 바뀌면서 복수국적자의 한국 국적이 자동으로 박탈됐던 일​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일평생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국적이 상실된 거죠. 한국인으로써 의무를 다하며 한국에서 멀쩡히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고 병원 다니고 잘 살고 있었는데, 혼인신고를 하려고 보니 국적이탈자로, 해외여행 다녀와보니 비자도 받지 않은 불법체류자로 순식간에 범죄자 취급을 받은 거예요.


그럴 거면 한국 주민등록번호로 세금 내고 은행계좌나 카드, 핸드폰 등 모든 사용내역이 조회되는데... 제대로 안내만 해줬어도 국적 선택하거나,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거나, 조치를 취했을 텐데 말이죠.


아무튼 피해자가 많아 한국 국적 상실한 자에 한하여 특례로 허용해준 기간도 있었지만 조국인 한국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지울 수 없어서 국적을 포기해버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요.




조금 느리더라도 정확하게, 가능한 한 신속하게, 오류는 최소한으로... 공무원도 민원인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화목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https://brunch.co.kr/brunchbook/kim20064789 



https://brunch.co.kr/@kim0064789/10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