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Jun 13. 2022

해외 생활 12년 차, 인종차별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

INNOCENT TILL PROVEN GUILTY

나는 사람이 대체로 그렇게 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황이 그랬을 뿐.


나는 실패도 많이 하고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정말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마음속이 지옥이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그 사람의 문제.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







어떤 사람은 길에서 자꾸 일본어나 중국어로 말을 걸거나, 일본 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물어보는 것 자체를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진짜 모를 수도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아시안들을 구분할 수 있는 우리와는 다른 것뿐이다. 우리도 어떤 사람이 벨기에에서 왔는지 네덜란드에서 왔는지 룩셈부르크에서 왔는지 모르니까.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관심의 표현 친절의 행동이라고 믿으면 그 사람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신원 불명확한 사람을 조심해야 하긴 하지만)


내가 아임 코리안. 이라고 대답했을 때 오~~~ BTS~ 블랙핑크~ 아이 라잌 킴치~~ 김치 어디서 사 먹냐고~ 이런 거 물어보면 진정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김치 어디 거 먹냐고 많이 물어본다. 길에서 만난 처음 보는 사람도, 직장 동료도, 마트에서 물건 고르던 사람도... 내가 열과 성을 다해 애용했던 한국 마트 하나가 문을 닫았을 때, 다들 그 마트 김치 먹었는지, 왜 거기 닫았냐고 이제 김치 어디서 먹냐고 물어본다. 나도 김치 어디서 사 먹을지 몇 달 동안 김치 유목생활을 해봤으니까 그 마음 잘 안다! 인종은 달라도 국적은 달라도 김치 사랑 마음만은 통하지 않겠느뇨!


그러면 인종차별은 아니지 않을까?


얼레 꼴레리 코리안이래요~ 하고 놀리면 그게 인종차별이 아닐까?  너님 노스코리안!! 테러리스트 극혐!!!!! 하거나, 바이러스라며 고백 코리아! 하거나, ' 코리안 '  있다면 그게 인종차별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영어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기분 나빠하며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문화 차이일 수도 있다. 손님은 왕이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한국식 고객응대가 당연하게 느껴져서,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직원의 말투가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거슬릴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못 알아들어도 다시 되물어보고, 내 주문을 받았다면, 그냥 그 사람은 주문받는 일인 자기 업무를 한 것뿐이다. 친절하면 좋겠지만 전화상담이나 창구 업무처럼 팁을 안 받는 곳이라면 동기부여가 안될 수도 있고.


단순하게 안 들렸을 수도 있다. 조금 더 크게 말하면 들릴 수도 있다. 완벽한 문법의 문장을 말하는 것보다 핵심 단어 하나만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도 있다. 그게 직원 입장에서 편할 수도 있다.


나의 목적은 일처리이지, 사랑하는 고객님 대접받으러 가는 건 아니니까.




또는 반대로 영어를 잘한다고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어보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톰 홀랜드가 에릭남에게 너 영어 진짜 잘한다~ 어디서 배웠어? 했을 때 암 어메뤼칸~ 이라고 대답하는 인터뷰가 화제였다. 진짜 몰랐으니까 물어봤겠지 자기도 외국어 배우고 싶었나 보다 외국어 실력자네 생각하면 나름 선의에서 나온 질문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종이 다르면 한국어를 잘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외국인처럼 생겼는데 한국어로 말 몇 마디 한다면, 한국어 잘하네~ 하면서 서비스 주고, 더 마음 쓰며 챙겨주는 게 한국의 '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례가 많다. 한국으로 귀화했거나, 외국계이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한국어를 잘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으니까. 의도는 더 잘해주려고 하는 것인데 말이다.


다만 외모가 다른 인종이라고 언어를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상대에 대한 비난을 한다거나,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대화에서 배제시키는 경우가 있다면 분명한 인종차별이겠지?




어떤 사람은 한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발음이라 소리를 제대로 내고 싶어도 못 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수백 가지의 언어가 있고 나도 그 언어를 다 알고, 각 언어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의 발음을 전부 잘 발음하지는 못하니까.


한국어로도 특이한 내 이름. 내 한국어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은 한국인 중에서도 거의 없었다. 다들 의아하게 되물어보고, 나는 평생을 내 이름을 여러 번씩 소개하면서 살았다. 이름표에도 잘못 적혀있길 여러 번, 상장에도 다른 이름으로 적혀있었고, 심지어 동사무소에서 임의로 내 이름을 수정해놓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정정되었지만 여전히 기본증명서를 상세로 떼보면 옛날 이름도 볼 수 있다.ㅋㅋ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나에게 차별한 걸까? 학교에서 나를 담당한 선생님들이 나를 차별했을까? 동사무소에서 근무하시던 그분이 나를 차별했을까? 나를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차별했을까?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싶어서 물어본 거니까 나를 향한 좋은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한국어로도 발음이 어려운 이름이 있는데 하물며 외국인이라고 얼마나 찰떡같이 부를까.


만약 이름을 알면서도 다른 이름으로 부르거나, 정확히 설명해줬는데 일부러 이상하게 발음하면서 놀리거나, 제대로 이름을 불러줄 노력도 안 한다면야 그건 당연히 인종차별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 역시 정서 차이 일 수도 있다. 눈치와 배려가 기본인 한국에서,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만한 부탁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 것이 정석이니까. 그게 당연한 거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됐을까? 부탁을 하면 답변으로 선택지가 '네' or '아니오' 두 개가 있는데, 우리는 어쩌다가 '아니오' 라는 거절권을 자발적으로 박탈하였을까? 왜 나의 결정권을 상대에게 넘겨 상대가 부탁하는 건 무조건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할까?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착한 아이 병에 걸려서, 거절하면 내가 미움받을까 봐 두려워서, 그래서 그런 걸까?


그 부탁을 들어주기 싫은 상황이라면, 왜 스스로의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고 타인의 평가에 전전긍긍할까? 왜 내 의견을 셀프로 디스 할까?


내가 "노" 라고 대답했을 때 "오케이" 하고 받아들이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 상황일 텐데.


왜 타인에게 나의 의견을 존중해줄 기회 주차 주지 않으면서, 타인이 나를 무시한다고 믿어버릴까? 내가 거절했을 때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낼까 봐? 그만큼 타인을 나쁜 사람으로 여기고 불신하고 있는 걸까?


그 차별은 그럼 누가 누구에게 하는 차별일까?







그러니까 이건 다 내 이야기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도 그렇게 피해의식이 깔려 있었다. 자격지심? 열등감 폭발? 발작 버튼이었을까?


그렇게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피해자가 되기는 가장 쉬우니까. 내 탓이 아니니까. 내 책임이 아니니까.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은 이 나라에서 제 역할을 다 하며 당당하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 거였는데,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면 행복할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내가 인종차별받는다고 믿으면서 살 수도 있다.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은 왜 아직도 아날로그로 일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