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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23. 2023

전업 수험생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다, 시험 두 달 전!

나도 아직 아픈데...! ㅜㅜ





1 우리 남편은 취업할 마음이 없는 걸까?


불과 지난주, 남편은 나에게 또 약속했다. 그동안 남발해 왔던 약속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진짜일까? 싶었다. 본인은 이번 연말에 꼭 시험을 볼 것이며, 지금부터 도서관 가는 시간도 아끼고, 음식 해 먹는 시간도 아껴서, 하루에 최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겠다고.


이제야...? 그동안 뭐 최선을 다했다더니 뭘 한 거지? 네가 준비하는 시험 그거 공부하는 똑똑한 니 동양인 친구들은 평소에도 꼭두새벽부터 출근해서 오밤중까지 하루 온종일 공부해... 원래 다들 그렇게 공부해;;; 시험 얼마나 남았다고 이제야 빡세게? 벌써 7년 넘게 준비하는데... 이제까지 뭐 하고? 그동안은 왜 안 했어...?


장기간의 수험생활로 실질적인 풀타임 근무를 해본 적 없는 사람... 그래서 통근시간 식사시간 다 합쳐도 도서관에 7-8시간 밖에 안 가있고, 심지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지 뭐 하는지도 모르지만, 산책 가서 예쁜 꽃이랑 높은 하늘 보면서 힐링이나 하고 있어도, 그래 공부하느라 힘들겠지 했어. 천성이 느린 사람이니까 그 다짐을 하고도 실제로 실행하는 데는 한-참 걸리겠지 예상은 했는데...


내가 코로나에 걸려버렸네. 불편한 모임자리 나가서 눈치만 보다 왔는데 코로나라니!!!


그래서 더더욱 불안했다. 남편이 나를 간호한답시고 자기 공부 못했다고 핑계 댈까 봐 조마조마했다. 남편이 또! 시험을 미룰까 봐 그게 더 걱정됐다. 특히나 그 시험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번에도 시험 접수도 안 하고 어영부영 넘어갈까 봐 스트레스가 극으로 치솟았다.


남편은 공부하기 싫었던 걸까, 자꾸 자기도 아프다고 아침마다 코로나 검사를 해댔다. 코로나 자가키트도 아주 성심성의껏 설명서를 정독하면서, 핸드폰에 15분 알람까지 맞춰놓고. 3일은 음성이 나왔는데, 그럴 때마다 자가키트를 불신했다. 그러다 어제 오후, 결국 남편도 코로나 양성이 뜨고야 말았으니.


그 길로 남편은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다. 핸드폰에 훌루를 다운 받아서 망할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끼고 하루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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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왜 순수하게 남편을 위로하지 못할까?


남편이 코로나에 걸리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이 공부 안 할까 봐 스트레스라니, 아이러니하다. 코로나가 얼마나 아픈지 내가 먼저 겪어서 아는데 남편이 쉬고 있는 꼴을 못 보다니, 참 내 심보도 고약하다. 아이고 우리 남편 코로나 걸렸떠여~? 우쭈쭈 해 줄 수는 없어도, 코로나 걸렸으니 푹 쉬고 얼른 낫길 바라는 인지상정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2018년 여름, 우리가 처음 결혼할 때는 남편이 여기서 2-3년만 살다가 이사 갈 거라고 설득했었다. 원래대로라면 2021년 여름, 우리는 분명 이사를 했었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남편이 공부와 알바를 병행해서 상대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 말을 믿었다.


결국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일하던 내가 외벌이 가장이 됐다.

벌써 2년째, 남편은 전업 수험생이다. 남편은 아직도 시험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 남편이 좀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남편의 수많은 장점과는 별개로. 그냥 속으로 되게 한심하게 보고 있었나 보다. 시부모도 안 해주는 학바라지를 와이프가 해주고 있는데, 시험도 안 보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남편이 한심했다.


평생 꿈이라면서 왜 노력하지 않아? 나는 내가 외벌이 해서 뒷바라지하는 건 진짜 상관없다. 그런데 꿈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은 너무 한심하다. 남편은 분명 본인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그 최선이 나에게는 한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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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택적 감정표현의 중요성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그런 우려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남편이 분명 꿈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사실이었다. 한없이 불안한 날에도, 회사에서 고갱님께 탈탈탈 털려서 멘탈이 나가도, 다 때려치워버리고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어도... 최대한 밝게, 긍정적으로, 남편을 대했다.


우리 남편에게는 배울 점도 참 많았다. 여유로운 성격, 안정적인 애착형태, 기복 없는 감정, 한결같음, 예쁜 말 등등 나와 정반대의 성격이라 거의 나를 인간 만들어줬을 정도로 보살인 사람. 그래서 나는 극단의 양가감정 사이에서 그냥 내 삶에 중심을 잡고 하루하루 잘 살아가기를 선택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그렇게 후회 없이 살고 싶었다.


내가 처음 코로나에 걸렸을 때 남편은 성심성의껏 간호해 주기도 했다. 비타민 섭취하라고 과일을 깎아놓기도 하고, 한인마트에서 블록 북엇국이랑 사골국물을 사다 날라주고, 옛날 입력값으로 파까지 사다가 썰어놨다. 그러니까 나도 남편을 잘 간호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내 맘속에서만 머물면 뭐가 문제겠냐만은... 사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격이라 뜬금없는 상황에서 불쑥 분노로 표출된다. 오늘도 그랬다. 코로나로 목이 찢어지는데도 소리소리를 질러서 이름을 불러도 만화 보느라고 못 들었을 때.


그래 이거 하나만이라면 화낼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옛날에도 그랬다. 외국인 와이프가 자기네 나라 와서 아등바등 살다가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자느라 전화를 못 받았던 전적이 있다면? 전업 수험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아프다고 드러누워서 똑같이 아픈 와이프가 한참을 부르는데도 못 듣다니?


그럴 때, 쌓이고 쌓인 억울함이 울컥 올라오는 것 같다.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내가 널 필요로 할 때 넌 한 번도 온 적도 없잖아! 대체 네가 하는 일이 뭐야? 그래가지고 올해 시험 본다는 약속 지킬 수나 있겠어? 네가 그 약속 미룬 게 벌써 몇 번째인데 네가 그럼 그렇지 뭐!!! 내가 여기서 너 때문에 얼마나 불행한 줄 알아?????


이 마음도 사실이다.


코로나 걸려서 너도 많이 아프겠다. 푹 쉬고 물 많이 마시고 잘 먹고 잘 자야 빨리 낫지. 공부할 것도 많은데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단 회복에 집중하자.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격리 끝나면 사다 줄게. 또 어떻게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 우리 같이 얼른 나아서 건강해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마음도 사실이다.


어떤 말을 내뱉을지는 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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