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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30. 2023

미국에 이민 와서 외벌이 중입니다

외벌이 아내의 보상심리

급성 우울증을 진단받고 3년, 나는 내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시궁창인데, 이 시궁창을 살뜰하게 쓸고 닦아 그나마 적응했다고 믿었다.

최소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게 평화로울 때는.


아주 호전됐다고 믿었던 나의 상태는

그냥 나의 눈을 가리고 현실을 외면한 것이었고

뇌를 멈추고 생각을 안 해버리는 회피였나 보다.


외부의 아주 작은 타격에도 이렇게 무너지는 걸 보면...




Happy ending's gone forevermore




나는 우리의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결혼하면서 나는 남편의 나라로 이민 왔고,

취업허가가 나오자마자 바로 취직했다.

전업수험생 남편을 위해 생계와 보험을 책임지고,

부부갈등을 해결하고자 상담이며 공부며 전부 내가 다 했다.


나만, 했다.




2년째 전업 수험생인 남편이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우린 정말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는다.

결혼 내내 수험생이었던 남편,

그 흔한 식사도, 산책도, 외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아침에 혼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텅 빈 집으로 퇴근해서 혼자 있다가

내가 잠들 때 즈음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남편은 지금의 결혼생활이 가장 행복하고 안정적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던

아니, 내가 잠잠하고 고분고분했던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 곪아 터지고 있었던 그날들이


본인에게는 나에게 사랑받는 느낌을 줬다고 한다.




감정 절약주의자의 양가감정




전 세계를 혼돈에 빠트렸던 코로나는 더 이상 팬데믹이 아니었고,

코로나에 걸려도, 양성이 나와도, 격리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게 됐다.


그런데 남편은 여전히 전업 수험생이었다.

시험을 보지 않는, 전업 수험생.


만약 남편이 올해 시험을 보기라도 했다면...

그 일말의 아주 작은 확신이라도 나에게 줬더라면!

이 생활에도 끝이 있을 것이라는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이번에도 참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병가를 썼지만

결국 양성이 나오는데도 꾸역꾸역 회사를 나갔다.

아픈 건 둘째 치고, 월급과 보험이 필요하니까.


아직 양성이니,

사무실에서 마스크 쓰고도 기침하기가 눈치 보이고

점심시간에도 공터를 찾아서 혼자 밥을 먹어야 했을 때

그때 뭔가 내 마음속에서 꿈틀 했다.


꾹꾹 눌러 담았던

억울함.

외로움.

서러움.



자신이 먹을 것을 구입하기 위해 마트에 간다는 남편에게 생필품을 부탁했다.

남편은 코로나 테스트를 먼저 해봐야 한다고 했다.


와이프는 양성이 나와도 돈 벌러 갔는데,

자기는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을 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가 내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이 숨이 턱 막혔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차라리 내가 죽으면 이 모든 게 끝날까 싶었다.




그래도 나는 퇴근길에 저녁을 사갔다.

같이 저녁 먹는 게 내 소원이었으니까...


남편은 나 혼자 식사를 다 끝내고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컴퓨터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도 켜지 않은 채로

남편이 존재하든 부재하든

내가 혼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개인주의 남편의 출력값




남편은 갑자기 폭발한 나를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 순진무구하면서도 가만-히 쳐다보는 눈빛.

이제까지 괜찮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묻는다.


나는 남편에게

네가 스스로가 인정할 만큼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다면

내가 학바라지 하는 건 괜찮다고 했었다.


너를 사랑하고

너의 꿈을 응원하고

네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 믿는다고.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살기 싫었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싫고

여기서 너무 불행해 죽을 것 같다고

나는 매일매일이 외롭고 혼자라고


악을 쓰며 말했다.




일관성이 중요한 서양인인 남편은

괜찮다는데 안 괜찮은 마음을 이해할 지각능력도,

우울하다는 말에 답변해 줄 공감능력도 없었다.


결국 다 내가 취직도 못하고 시험도 안 보는 내가 무능력하다는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게 중요한 거잖아.

나 때문에 네가 불행하다면, 너의 행복을 찾아야지.

나는 반대의 상황이라면 아무 불만 없이 너를 지원했을 거야.


나는 그게 남편의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한국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악의는 없는 사람.




108파운드의 108번뇌




그래 뭐 문화차이 어쩌고 사고방식의 차이 뭐 이런 거 다 알겠는데

제대로 된 공감 한 번을 받지 못하는 내 마음이 무너진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래 네가 많이 힘들었구나" 그 한 마디를 들을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그래도 남편도 많이 노력하고 있을 거야~ 네가 이해해" 하는 반응이 가장 많고

남편은 "네가 힘들지 않게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묻는다.


둘 다 나를 위한 말이지만

아무도 내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이 굳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내 감정이 부정당할 때마다 숨이 막힌다.




한동안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었더니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폭식하던 버릇이 남아 욕심내서 먹으면 토하기를 반복했다.

온몸이 아리듯이 아파왔다.

나는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결혼하고... 모든 생기를 잃은 것 같다.

동굴로만 들어가게 되고 사라져 버리고 싶다.

운동을 해도 건강식을 먹어도 누구를 만나도... 우울하다.

그냥 죽은 동태 눈깔처럼 멍하다.




나는 왜 이혼하지 못할까?




남편은 내가 화났을 때 본인에게 납득이 되면 바로 고친다.


"~~라는 말 한마디라도 해줄 수 있잖아!"

"최소한 고마워하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적어도 이 정도는 네가 해야지!"

했던 것들을 해주긴 한다.


그러니까 이게 진짜 더 최악이다.


차라리 안하무인으로 나오면 바로 이혼할 텐데,

노력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이니 헛된 희망을 품게 된다.


나는 그 최소한도 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나도 양성 나왔는데 출근했잖아!

라고 했더니 바로 마트에 가줬다.

대체 우리가 함께 하는 게 뭐가 있어? 같이 먹자고 저녁 사 왔는데 넌 그것조차 무시했잖아!

라고 했더니 그다음 날부터 저녁을 차려준다.




그리고 어제 자기 전, 남편은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어서 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집에 오면 내가 있고

서로 볼 수 있고

손을 잡고 안아 줄 수 있어서 참 좋다고


하긴 한국과 미국으로 장거리 연애를 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




남편은 내가 원하는 위로를 해주지는 않지만

가끔 정말 예쁜 말을 해준다.


일평생 예쁜 말을 갈망하는 나에게는

무방비 상태에서 듣는 그 한 마디에

쉽게 떠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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