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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y 31. 2023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




나는 요즘 아~~주 살~~~~짝 다운되어 있다. 한국도 다녀오고, 하와이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서 재밌게 놀고, 회사도 매일 나가는데, 대체 왜 그러지. 


아니, 나는 사실 왜 그런지 알고 있다. 이 감정은 나의 현실에 부딪혔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무기력함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막함

이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답답함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한국식으로만 생각해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간 나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살아간다.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자신을 바꿔가면서까지 관계를 지킨다. 노오력을 한다. 마치 뭔가를 하지 않으면 죽음과 같다는 생각으로 살아있는 모든 순간 온갖 노오력을 한다. 노오오오력을 한다는 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게 최선이라고 한다. 지금이 최선을 다 한 거라고. 더 잘하겠다는 빈말은 못하겠다고. 솔직히 어떻게 더 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알려주면 자기도 할 수 있는 한 노력하겠다고...


그 순간, 내가 노력을 멈춰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급격히 다운되는 것 같다. 

나는 가만히 놔두는 법을 몰랐다. 현재에 만족하는 법을 몰랐다. 







누군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이 이해될 때가 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나의 기분이 개운하다면 참 좋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 사실 남편은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우울증인 나를 곁에서 지켜만 준 것도 남편으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것이었을 것이다. 


한 집에 사는 사람이 우울증일 때, 많은 경우 주변 사람들도 자신을 잃고 우울에 전염된다. 좋은 의도로 우울에 공감해 주고,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도와주려고 하지만, 사실 우울증은 누가 고쳐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남편이 나를 방치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통곡을 해도, 아무것도 못 먹어도, 말을 잃어도, 남편은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자신의 입장을 담담하게 전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건강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나아졌을 때에도 남편은 곁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남편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남편이 자신의 방식으로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 표현이었을 것이었다.


나는 남편이 나를 보살펴 주며 함께 힘들어하길 바랐을까? 둘 다 같이 우울에 빠져서 생활을 이어가기조차 어려운 상황을 원했던 걸까? 나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병들게 하며 남편에게 벌을 주고 싶었던 걸까? 내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남편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다. 남편이 옳았다. 남편은 남편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나를 방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이 우선인 것이 당연하다. 아마 나를 위해서 나를 잘 돌봐 줄 수 있도록, 남편은 더더욱 정신줄을 붙잡고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분이 다운되었다. 남편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브런치에 소개되는 다양한 이혼 이야기를 읽었다. 브런치 메인에 하도 소개되니 평소에는 의식적으로 피했던 주제이지만, 기분이 다운될 때에는 괜히 찾아서 읽게 된다. ㅜㅜ 


수년간 배우자의 해외 유학 ‘학바라지’를 하다 이혼을 원했던 작가님

배우자의 병수발을 들며 생계까지 책임지다 희귀병 투병 중인 작가님

사업이나 집 명의 등 경제공동체라 재산분할 때문에 고민이셨던 작가님

국제결혼으로 해외에서 남편과 이혼하고 자립하는 과정을 공유해 주시는 작가님...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랑이 있고 더 다양한 이별이 있다. 그런데 이 글들의 공통점은 작가님들 모두 이혼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다는 사실이다. 배우자가 이혼을 거부해도 합의를 유도해 내고, 아이들을 위해서 더더욱 이혼을 선택하신, 그렇게 스스로의 인생을 되찾기 위한 고군분투기.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니, 이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안다. 미국은 파탄주의라 일사천리일 텐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남편을 위해 정말 많은 것을 바꿨다. 물론 남편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했지만, 우리의 ‘편의’를 위해 내가 자발적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올 초에도 나는 똑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나의 선택이었다. 나의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의... 욕심이었다.


그래서 지금 남편의 최선에 기분이 다운된다. 내가 아무리 노오오오력을 해도 지금 이 상황이 우리에게는 최선이구나... 지금도 남편은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니까, 내 기분이 다운된다. 







우리 남편은... 한결같이 과일을 씻어준다. 치킨을 사 오면 나도 먹을 수 있도록 다리 하나와 날개 하나를 냉장고에 남겨둔다. 뼈를 고이 발라서 언제든 데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준다. 늦은 밤 내가 배고프다고 하면 기꺼이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준다.




사실, 나는 지금은 빼앗긴 인생도 없고, 잃어버린 자아도 없다. 다만 약속된 미래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아직은. 왜냐하면 남편은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어쩌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들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들을 빼앗겼다고 할 수 있을까?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 

내 것이 아닌 들인데, 그 들에 와야 할 봄까지 빼앗기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그렇다면 그 봄을 빼앗겼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도 

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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