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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an 04. 2023

새해 첫날부터 남편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흑화하거나 동화되거나

요즘 내가 매일같이 읽는 블라인드 에 올라온 질문 하나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사람이 마냥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하고 살면 어찌 됨?"


그리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현자의 답변


"흑화하거나 동화됨"




https://brunch.co.kr/@kim0064789/410








우리는 결혼하고 매년 새해를 맞이하며 싸웠다.

여행을 가서도 데이트를 가서도

새해라고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어서 꾸역꾸역 나가면서도 싸워댔다.


결혼하고 맞이한 첫 새해는 2019년, 뉴욕으로 볼드랍을 보러 갔었다.

가장 유명한 도시, 최첨단 유행의 집약체, 세계 경제의 중심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브로드웨이에 모인 그 군중들 속에서

우리는 비 맞은 생쥐 꼴을 하고 싸웠다.




2020년엔 박물관을 가서 싸우고

재작년엔 하이킹을 가서 싸우고

작년엔 미술관을 가서 싸웠다.




한국보다 19시간 늦은 하와이의 신년 https://www.instagram.com/reel/Cm75Ik0NFFL/?igshid=NTdlMDg3MTY=




그렇지만 올해는 달랐다. 싸우지 않은 건 아니지만 ㅠ

싸우고 화해하고, 평화롭게 새해를 맞았다.

올해는 특별한 뭔가를 계획하지도 않았고 그냥 평범하게 휴일을 보냈다.




크리스마스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대판 싸우고,

그다음 날 언니 부부와 약속이 있었기에 곧 화해했다.


그렇게 덮고 넘어간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상처고 남편은 무슨 생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달라진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에게 상냥하게 다정하게 대해줄 수 있다는 중대한 변화이다.


그 후 연말모임에서 만난 언니가

우리가 서로 너무 사랑이 넘쳐서 (?) 싸웠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고 하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남편과 싸우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도 단조로운 일상에서 특별한 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고

남편은 반복되는 일상 속의 소중함을 이미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냥 그렇게 우리가 달랐을 뿐이었다.


이벤트가 많고 사람도 많은 시끌벅적한 도시 생활과 휘둘리는 삶에 익숙한 나와

잔잔하게 흘러가는 자연의 이치를 이미 알고 있는 한결같은 남편의 차이었을 뿐이다.




특별해야만 한다는 그런 기대 없이 조용히 새해 첫날이 지나갔다.


런던-파리-서울 순으로 불꽃놀이를 차례로 보고, 뉴욕 볼드랍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그리고 우리 집 창밖으로 하와이 명물 (?) 불법 불꽃놀이를 보았다.


새해 첫날엔 한식당에 가서 알탕을 먹었고

둘째 날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고

셋째 날엔 요가복 택배가 온다.


이렇게 조용히 한 해가 지나갈 것 같다.




https://brunch.co.kr/@kim0064789/519




2023


2022


2021


2020


2019




우리가 뉴욕까지 가서 싸웠던 것도 사실은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발적으로 나를 희생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면 그대로 실천했으면 될 일을,

남편에게 맞추며 나의 의견을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뉴욕 여행에 더욱 들뜬 건 나였다.

관광 계획을 세우고 놀러 다니고 싶은 사람인 나였다.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여행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을 사람도 나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볼드랍을 보기 위해서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티켓을 사야 한다고 링크까지 보내놓았다.

뉴욕에서 태어난 남편은 따로 티켓을 사야 한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며 그냥 밤에 나가면 된다고 했었다.


몇 번 실랑이 끝에 나는 결국 뜻을 굽혔고

우리는 뉴욕 한복판 길이 막혀서 볼드랍은 커녕 아무것도 못 볼 처지였다.


나는 왜 티켓을 못 사게 했냐고 남편을 원망했고,

남편은 이렇게 길을 통제할 줄 몰랐다며 당황했다.


우리는 그다음 날 묵을 호텔 예약증으로 어떻게 저떻게 바리케이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추위에 달달 떨면서 사람들 미어터지는 곳에서 티켓 값만큼 고스란히 소비하면서 불편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기다리는 내내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네가 서른이 넘었는데 대체 언제 적 기억으로 티켓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냐고!!!

30년 전이랑 지금이랑 같냐고,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다고!!!

대체 왜 예약을 못하게 했냐고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됐던 거 아니냐고!!!!!

어차피 이렇게 돈 쓸 거 티켓 샀으면 됐지 않았냐고!!!!!


결국 우리는 정말 좋은 위치에서 볼드랍을 봤는데도, 나는 여전히 화가 나있었다.




비행기 값, 호텔 값을 속으로 계산하며

우리가 뉴욕까지 왔는데 하면서 본전을 생각한 건 사실 나였다.

여기까지 와서 볼드롭을 보고 싶어 했던 것 역시 나였다.


나는 남편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따뜻한 곳에서 즐겁게 볼드랍을 기다리고 싶었다면, 내 것만이라도 티켓을 샀어야 했다.

나 혼자 가면 무슨 의미냐고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티켓을 사기 거부하는 남편 곁에 불만 없이 있을 수 있어야 했다.


네 말이 틀리면 어떻게 되나 보자 하고

애초에 남편을 향한 원망 가득한 마음으로 갔으니 내가 대 실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당시에는 너무 춥고 화나고 힘들었던 순간도, 추억이 된다.


올해 고작 3일밖에 안 지났어도 싸울 일은 많았다.

다만 싸우지 않고 평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냥 조금 일찍 미화시키는 것...




감정의 독립

행복의 자립


내가 해야 할 기대는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 는 것뿐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 는 식의 기대는 안 된다.


남편을 제외한 순수하게 나만의 인생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남편에게 실망하지 않고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다.







https://brunch.co.kr/@kim0064789/304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plus/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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