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 살 때 버릇을 아직 못 버렸다는 의미)
우리 남편은 장점이 정말 많은 사람인데,
남편의 장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장점들을 진심으로 감사하기 위해서는
화아아아아아아아알짝 열린 마음과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가졌던 삶의 방식이나, 옳다고 굳게 믿었던 가치관들이
어쩌면 이곳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고, 입으로도 말하고 있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의 받아들임이 부족했나 보다.
나는 어쩌면 굉장히 모순적인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호화스러운 결혼식은 필요 없다 해놓고
사실은 내가 공주놀이 할 수 있는 결혼식이나 결혼 생활을 원했나?
나는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결국 돈을 벌어오는 내 모습에 자만했나?
연인처럼 서로 사랑하기 만을 바란다 해놓고
결국은 남들 다 하는 것들에 욕심부리고 있었나?
평생 친구처럼 재밌게 살기를 바랐으면서
나는 한국 사회의 기준으로 남편을 평가하고 있었던 걸까?
우린 한국에 살지도 않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나의 열린 교회 닫힘은 결혼 생활뿐만 아니라 나의 일상 전반적으로도 나타난다.
미니멀라이프 한다고 이미 받은 선물도 다 비웠으면서
값비싼 선물이나 특별한 이벤트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한국에서 대기업에 취직도 못했지만, 대기업 근무 분위기도 분명 싫어했을 텐데
워라밸 확실한 곳에서 일하면서 라이프를 못 찾고 방황하다니.
안정적이고 책임 소재 적은 일을 찾는다고 찾았지만
사실은 도전적이고 과감하고 열정을 쏟아 자아실현 할 그런 직업을 꿈꿨을까?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 했지만
그 여유와 평화 속에서도 분과 초를 다투고 전투적인 자세를 놓지 못한 건 아닐까?
해외생활을 오래 했으니
열린 마음으로 외국 문화도 마음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착각했나 보다.
열린 마음 닫힘 ㅠ
그랬다. 나는 한국인이었다.
나는 한쪽 다리 올려서 앉는 것도 좋아하고
손뼉 치면서 웃는 것도 좋고
로또 사면 제일 먼저 집을 살 것이다.
한식도 너무 좋아하고
굴국밥이랑 알탕이랑 곱창이 먹고 시프당
그렇지만 나는 조금 변했다.
조금 천천히 가도 아무 일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고
나의 진심을 솔직하게 말해도 평가받지 않는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그냥 내 존재 만으로도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그리고 타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배우고 있다.
누군가 억지로 나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나는 변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만큼.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누구 하나가 희생하지 않고도,
타인을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줬다.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일을 할 때에도, 또는 내가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을 하더라도,
똑같이 응원해주며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방법을 보여줬다.
내가 실패해도 내 곁에 남을 사람은 여전히 함께이고
내가 성공할 때 내 곁에서 진심을 다해 축하해 줄 사람도 여전히 함께이다.
아무 계산 없이,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해도,
나를 믿어줄 사람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여전히 내 곁에서 내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내가 바랐던 방향으로. 천천히.
한참 늦었지만 팥죽을 먹는 날이 있었다고 해서 팥죽을 사러 갔다가 옆에 있는 단호박죽을 사 왔다.
한인 마트에서 6불. 달고 맛있습니다.
퇴근길 새로 생긴 반찬 가게에서 김치를 사 왔다.
이로서 동네에 반찬가게가 4개나! 김치는 이곳으로 정착합니다.
신정이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떡국이 먹고 싶어서 온갖 좋은 재료 다 넣고 끓였는데 맛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줄 생각에 행복해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게 남편의 사랑표현 방식이라 했는데... 나는 남편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줄 수 없다 ㅠㅠ 내가 먹어도 맛없기 때문에 ㅠㅠ 미안해 남편 ㅠㅠ
"계란 넣고 파 마늘만 넣어도 맛있는데 ㅠㅠㅠ"
엄마의 한마디에 맛없는 이유를 알았다. 파는 깜빡하고 못 사서 마늘은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서 안 넣었는데 ㅋㅋㅋㅋㅋ
나는 기본도 안 했으면서 소고기와 사골국을 쏟아부어 비싸고 맛없는 떡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괜히 파를 쫑쫑 썰고 마늘을 다지고 갖은양념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양념들이 맛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기본적인 노력도 안 했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훌륭한 환경과 최상의 조건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남편이 사다준 오가닉 비프와 한국 마트의 사골 국물로 맛없는 떡국이 나의 현 모습일까?
내가 만약 한국에서 새벽까지 야근하면서 스트레스받으며 일했다가 해외취업으로 이직했더라면
지금의 근무환경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내가 만약 한국에서 집 혼수 예물 예단 예복 함 봉채비 꾸밈비 이바지 답바지 폐백까지 다 챙기는 결혼을 했다면
결혼식도 생략한 결혼 생활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사정이 어려워져서 뼈 빠지게 온갖 고생 하고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했다면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 호사스러울 정도로 행복했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항상 말해왔던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선택으로 나의 결정으로.
나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
내가 동경하는 삶이 한국사회라면 나는 귀국하면 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내가 항상 말해왔던 삶이라면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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