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Jul 18. 2022

고래는 춤추고 싶어요!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런 제목은 칭찬 때문에 춤을 추는 고래는 원래 춤추고 싶지 않았다는 진실과, 고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그 고래를 춤추게 하려 한다는 강제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원래 춤추고 싶어 하는 고래에게는 칭찬이 필요 없다. 동물원에서 조련사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장소에서 춤춰야 하는 고래는 칭찬이 필요하다. 왜? 원래 춤추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나 넓은 바다에서 혼자 헤엄치는 자유로운 고래가 춤을 추거나 물 위로 뛰어오르는 이유는 누군가 옆에서 칭찬해서가 아니다. 바다의 고래는 그냥 춤추고 싶어서 춘다. 이들에게는 칭찬이 아니라 아마 그들만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이 필요할 거다. 그럼 알아서 춤춘다.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하와이 Electric Beach (프리다이빙을 즐기시는 지인에게 공유받은 영상)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는 춤추기 위해 칭찬받을 필요가 없다...!


입장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당연히 채찍보다는 칭찬이겠지만, 춤추고 싶지 않은 고래를 강제로 춤추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 진정으로 고래를 위한 일이 아니었음을. 


이기심으로, 욕심으로, 바라고 원하는 마음으로... 그 기대가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작은 희망적 기대라도 붙잡고 있어야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상대를 속박할 수도 없는 노릇. 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상대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강화시킨다'는 사상 자체가 오만한 것이다. 




우리 남편이 이 책의 저 구절을 읽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특정 행동을 강화하기 위한 타인의 칭찬에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 솔직히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냥 싫다. ㅋㅋ 이것도 내가 극복해야 할 일.


연애 때는 칭찬을 많이 하는 남편의 자상함이 좋았는데, 이제는 그 칭찬의 저의가 너무나도 눈에 빤히 보여 듣기가 싫다. 약간 기계적이기도 하고 진심이 안 느껴진달까? 그 진심을 내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 상황이 있다. 남편이 어느 한 마디를 했을 때 그 진심이 전해져 내 마음에 북받쳐 오를 정도로 감동적인 상황. 그때는 정말 진심이라고 믿어진다. 


하지만 전혀 그런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단 말이쥐.







자 여기서 남편의 한계. 


남편은 칭찬으로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이끌어내려 하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 네가 뭔데 날 평가해? 하는 생각.


먼저 시키지는 않지만 기대에 가득 찬 그 초롱초롱한 눈을 쳐다보면 수가 빤히 읽히는데 더 하기 싫어짐.


예를 들어 남편이 나와 시댁의 관계가 가족처럼 돈독해지기를 바란다면, 시댁에 연락할 때마다 나에게 고맙다고 하고 칭찬할 필요가 없다. 


내가 바라는 건 남편이 나에게 관심을 주고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서, 내가 사랑받는다고 충분히 느껴질 때면, 마음에서 우러나와 시부모님께도 잘하게 되는 것.


왜냐하면 관계주의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나에게는 시부모님은 남편과 연결된 관계이므로, 남편과의 좋은 관계가 선행해야, 시부모님과의 좋은 관계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이 아닐지라도, 나도 인간이니 바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남편이 할 일은 나를 바다에 풀어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걸 주는 것이다.


나를 수조에 내버려 두고 내가 춤추라고 칭찬하는 게 아니다. 내가 남편이 바라는 행동을 할 때마다 긍정적인 강화를 주는 것이 아니다.


하루 10분이라도 온전히 나와 대화를 한다거나, 중간중간 나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주고, 나와 구체적인 미래를 약속하며 확신을 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을 준다면, 칭찬 따위 없어도 내가 자발적으로 며느라기 했을 것. 명절이며 생신이며 어버이날이며 한국식 미국식 내가 아는 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한계


나는 그렇게 남편의 수를 읽을 수 있으면서도 어거지를 부린다.


"옜다! 그래, 네가 그렇게 원한다는데 마음 넓은 내가 한 번 들어준다" 할 수도 있는데,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해줄 때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 남편은 아이처럼 행복해하는데. 


나는 밴댕이 속알딱지라 그 마음을 먹기가 그렇게나 힘들다.


"나는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너는 왜 아무것도 안 해!"

"너는 왜 받기만 할 줄 알고 줄 줄은 몰라!"

옛날에는 이렇게 쌓이고 쌓여서 내가 폭발한 적이 있었다. 기브 앤 테이크에서 테이크는 확실한 남편.


내가 먼저 해준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와 줄 남편. 그 오랜 시간을 내가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우리의 관계가 천국일지 지옥일지 정해지겠지. 


하지만 나는 남편이 원하는 걸 들어준다고 (예를 들어 시댁에 잘함으로써)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그런 인과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조건들과 별개로 아내로서 여자로서 먼저 사랑받고 싶다. 즉,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다.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보면 나도 여전히 대가를 바란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먼저 사랑해줄 수도 있는데. 얄궂은 마음이 든다. 




남편은 내가 영혼 없이 그냥 기계적으로 칭찬을 해줘도 받아들인다. 진심 없이 상황을 마무리하려고 사과를 해도 받아들인다. 


사실 진심을 남편도 알겠지. 그런 데는 (한국어로 해도) 귀신처럼 알더라. 그렇지만 내가 칭찬을 해줬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고 신뢰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꼬이지 않고 구김살 없는 남편이 더 대단하다. 더 큰 사람이다. 나나 잘해야지...







나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뭐라도 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 "이제 공부해야지" 마음먹었더라도, 엄마가 갑자기 "넌 공부는 대체 언제 할래?" 하면 학업의지가 팍 꺾였던 것처럼. 내가 하고 싶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한다.


그래서 거의 방치된 결혼생활 덕분에 글도 써보고 여러 활동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한국에서는 아무도 가만히 두질 않는 상황이다. 

학생 때는 공부해라 대학만 가면 맘대로 해라 라고 했으면서, 

대학 때는 취업해라 취업만 하면 맘대로 해라 라고 하고,

취업하면 결혼해라, 결혼하면 애 낳아라, 내 집 장만해라, 노후 준비해라...


지금이라도 내가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탐구해볼 수 있어서 좋다. 그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자.













http://m.yes24.com/Goods/Detail/104744364


매거진의 이전글 우린 이것을 편집증이라 부르기로 약속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