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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21. 2022

내 남편이 완전체라면, 누가 그를 완전체로 만드는가?

~~오징어 메이커의 귀환~~

어제 글은 너무 솔직하게 썼나 다른 글들에 비해 반향이 컸어서,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을 지우고 내가 해야 하는 생각만 남겼다.


우리는 사실 그날 평화롭고 차분하게 대화를 했고,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털어놓았고 나는 전부 들어주었다. 우리는 화내지도 언성 높이지도 않았고, 대화는 잘 마무리했다. 다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거리며 옛날의 억울한 감정들이 치솟아 올랐을 뿐. 그리고 그런 감정이 든 상태에서 웃으며 남편을 대하기가 어려웠던 것뿐이었다.




https://brunch.co.kr/@kim0064789/407




내게 익숙했던 갈등 해소의 방법이 아니라 나에게는 적응해나가는 시간이 좀 필요했나 보다. 나도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나의 의견을 조곤조곤 말하고 싶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참고 참고 참다가 손절해버리거나 참고 참고 참다가 화내고 소리 지르고 울고 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서, 그렇게 해야지만 감정 해소가 됐던 건 아닐까?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자신만의 생일 케이크가 갖고 싶다고 여러 번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결국 억울함에 울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야 가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이라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거기서, 미국 엄마표 퍼펙트 훈육법으로 심호흡을 하고 감정을 조절하라고 하면... 덕선이의 억울함은 누가 들어주나?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남편은 다르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을 하긴 한다. 남편은 내 의사를 존중하기는 한다. 남편은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것처럼 나를 대하긴 한다.


나는 더 이상 억압되어 있고, 강요당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갇혀있지 않다. 




https://brunch.co.kr/@kim0064789/193




서양문화권 : 개인의 자유, 권리, 선호 등을 중시

서양에서 중시하는 특성 일관성, 타인의 선택에 무관심한 서양인

레온 페스팅거 ‘인지부조화 이론'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욕구


남편은 일관적으로 친구를 대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내가 한국식 관계주의로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바뀌길 바랐던 것


동양문화권 : 집단 속의 조화 화합 등을 중시

한국인의 심리 근간 : 관계주의

타인의 취향이나 선택에 따라 의견을 바꿀 준비가 돼있다.

영향을 주고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


남편의 선택에 크게 영향을 받는 나. 영향을 주고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사회적 맥락에 따라, 

남편의 태도에 따라, 

남편이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일관적이지 않은 다양한 반응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반응이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반응을 했다.


내가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바뀜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기호 준비해두고, 상대에 맞춰 포기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한다.

선택의 중요성이 서양인에 비해 약한 한국인


이제 결혼했으니 그러면 안돼, 

결혼했으니 그건 바람이야, 

결혼했으니 이렇게 해야 해,

결혼했으니 친구와의 관계도 변해야 해,

사회적 맥락을 읽으라고 눈치 챙기라고 상대에게 피해 주지 말라고,

나라면 그랬을 것이기 때문에 남편에게도 똑같이 요구했다.


그게 남편에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자신의 자유, 권리, 선호를 침해하는 일

집단 속의 조화를 위해 나에게는 당연했던 일




https://blog.naver.com/0064789/222839057643




아와 타자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하나의 형태로 통합해서 사고하는 것이 불가

자아분열 splitting 

흑백논리 black-and-white thinking

이분법적 사고 all-or-nothing thinking


내가 자아분열처럼 느껴지는 건 내가 상대에 따라 나를 바꾸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가 안정적이고 일관적이길 바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스스로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기로 선택했다.

부정적인 대화나 갈등 상황을 구분하여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의 기본 상태는 긍정과 행복이기 때문에,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아무리 대화가 평화롭게 마무리됐어도, 부정적인 기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나였다.

나만 굳건히 중심을 잡으면 내가 혼란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타인에게 더 이상 영향받지 않을 수 있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그랬어요




구멍이 뿅뿅 난 티셔츠를 입고 나가도 남편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거지꼴로 하고 다닌다고 싫어할 뿐.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남편은 나와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다만 내가 대체 언제 취직해서 이사 가냐고 답답해할 뿐.


남편은 시어머님께는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자랑스러운 아들일 것이다.

친구에게는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일 것이다.

회사에서는 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그만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행복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


그런 그를 평가하고 분석하고 예측하고 판단한 것은 나였다.

나와 대화가 안 통한다고 남편을 완전체로 만든 건 나였다.

나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남편을 찌질이로 만든 건 결국 나였다.


남편도 누군가와는 정말 재밌는 대화를 한다. 그 사람에게는 진정으로 좋은 대화 상대일 수도 있다.

남편도 일상에서는 나와 정말 재밌는 대화를 한다. 내가 휘청이지 않을 때는 좋은 대화 상대일 수도 있다.




https://blog.naver.com/0064789/222617654631

Rabbi Dr. Abraham Twerski




랍스터는 성장하기 위해서 껍질을 갈아입는 '탈피'를 반복한다. 랍스터는 커가는데 껍질은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랍스터가 자랄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은 껍질이 더 이상 맞지 않다는 불편함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스트레스를 느낄 때, 그것은 우리가 성장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결혼을 유지할 것인지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에 행복을 빌어주며 각자의 길을 갈 것인지

나는 그것만 결정하면 되는 거였다.








불교에 사무량심(四無量心) four immeasurables / four infinite minds 라는 교리가 있다.


자무량심(慈無量心)은 모든 중생에게 즐거움을 베풀어 주는 마음가짐

Loving-kindness or benevolence is active good will towards all


비무량심(悲無量心)은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고통의 세계로부터 구해내어 깨달음의 해탈락(解脫樂)을 주려는 마음가짐 

Compassion is identifying the suffering of others as one's own


희무량심(喜無量心)은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을 버리고 낙을 얻어 희열 하게 하려는 마음가짐 

Sympathetic joy is the feeling of joy because others are happy, even if one did not contribute to it (the attitude of a parent observing a growing child's accomplishments and successes)


사무량심(捨無量心)은 탐욕이 없음을 근본으로 하여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미움과 가까움에 대한 구별을 두지 않는 마음가짐

Equanimity is even-mindedness and serenity, treating everyone impartially




부정적인 사고에서 빠져나와 긍정적인 사고로 흐를 수 있도록 내가 연습해야 할 생각들이다. 


타인의 단면만을 보고 속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타인의 불행에 안도하거나 위안받지 않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주고 싶다.

그의 행복에 나도 행복하고 축복해주는 그런 관계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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