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Sep 30. 2024

미국 직장인들의 휴가 사용법

이 업무가 네 업무냐

내가 한 한국 회사에서 일했을 때의 일이다.


효율과 신속 정확이 생명인 회사였다. 직원들 모두 정말 유능하고 다재다능해서 회사에서 아주 그냥 쪽쪽 단물 다 빨려먹고 등골까지 빼먹힐 것 같은 약간 그런 느낌이었달까...


그 회사는 야근 수당도 없었고 (관련 법 개정 전이라) 1년 미만 근로자에게는 따로 연차나 휴가도 없었다. 개인 번호로 업무 연락이 오고, 개인 노트북 개인 비품을 회사 일에 사용했었다. 심지어 휴가 기간에 담당자에게 연락하는 일이 빈번해서 노트북을 들고 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게다가 위로는 의전 해드려야 하고, 아래로도 백업해야 하고, 안으로는 디벨롭 하고 밖으로는 팔로업 하고, 회식에 워크샵에 동기사랑 나라사랑에 챙길 게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게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이 담당한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사소한 디테일도 확인하고 연락하고, 야근에 주말근무도 해내는 그런 직장생활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본인 연차를 기간 내에 소진해야 하는데 (안 쓰면 부서에 불이익 있다 그랬나) 일이 많아서 그냥 출근한 분도 봤다.




그런 내가 미국 직장에서 근무한 지 어언 6년 차.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한국에서는 일 중독자처럼 회사와의 분리가 어려운, 사실상 불가능한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다. 말이 좋아 워커홀릭이지. 요즘은 그래도 근무환경을 개선한다고 하긴 하던데.


법을 몇 번을 바꾸고, 근무환경을 개선해도... 천조국만 할까? 아무리 MZ 직장인이고 라떼라도, 정시 퇴근하기, 정규 업무 외 관행 불참하기, 표준 근무 시간 준수하기, 시간 외 수당 신청하기, 연차 사용... 뭐 이런 아주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도 눈치를 준다는데.


아마 지금 우리 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우리 팀은 한국식 직책으로 보자면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나 (신입)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코로나 이후 최고의 업계 호황기

연중 최대 극극극 극성수기

창립 이후 최다 방문객...!!!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제일 바쁠 시기에


한 분은 결혼으로 3주 휴가 (1년 전부터 예정)

한 분은 애초에 회사를 거의 반절만 나옴, 매번 당일 또는 하루 전 휴가나 재택 통보함 (회의/PT 전날도)

한 분은 이메일 보냈는데 다음 주까지 휴가라는 부재중 자동 응답 메일을 받음 ㅋㅋㅋㅋㅋㅋㅋㅋ


다 휴가 가고 나만 남음...?!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당연히 전화 메일 안 받고 연락 안 됨. 뭐 연락이 돼도 회사 시스템에 접속하는 성의를 보이지는 않을 테니 방법이 없음. 그럼 일 누가 다 함????? 컴플레인 누가 다 받음? 업무분장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데. 나는 뭐 욕받이 무녀로 취직한 건가? 내가 이러려고 회사 다니나 자괴감 들어...




그런 나에게 엄청난 깨달음이 다가왔다. 나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일이 있으면 일을 해야 한다’ 라는 로직이 나에게 기본값이었다. 누군가는 맡아서 해야 한다. 일처리가 급선무다. 그래서 일이 많은데 아무도 하지 않으면, 나는 그 일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개인 시간을 써서라도, 앞장서서 그 일을 해냈다.


주체가 사람이 아닌 ‘업무’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달랐다.

주체가 ‘사람’이다.


일이 생겼어도, 심지어 본인 담당 업무라도, 자신이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일이 미뤄져도, 일이 중단돼도, 일이 망해도. 그건 회사 일, 사람이 먼저다!


내가 할 수 있으면 한다.

내가 시간이 되면 한다.

내가 여건이 되면 한다.


내가 일이 너무 많으면? 휴가를 낸다.

내가 피곤하면? 휴가를 낸다.

내가 일하기 싫으면? 휴가를 낸다.


휴가는 근로자의 보장된 권리이니까!




대기줄이 수 십 명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꿈뻑 졸고 있을 정도의 무심함!

임원이 참석하는 부서 전체 PT가 있어도 쿨하게 전 날 휴가 통보할 수 있는 태평함!

동료에게도 알리지 않고 휴가를 계획해 버리는 은밀함!

팀에 한 명만 남겨둔 채로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


이것이... 지금 우리 팀. ^^;







이 업무가 네 업무냐

아닙니다... 저는 최저임금 받고 일하는 신입사원일 뿐입니다...

이 업무는 네 업무냐

아닙니다. 저는 공무원 시보 나부랭이일 뿐입니다...

이 업무도 네 업무냐

아닙니다. 저 이제 입사한 지 두 달 됐을 뿐입니다...

그럼 이 업무가 네 업무냐

아닙니다. 저는 아직 수습기간이라 사내 교육과 직무간 훈련부터 받고 싶습니다...

내 너의 정직함을 높이 보고 이 업무 네 개를 너에게 모두 주겠노라!!!

...


이 연못에서 도망가야 해!!! 돔황초ㅑㅑㅑㅑㅑㅑㅑ




https://brunch.co.kr/brunchbook/kim20064789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414149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클래스

https://class101.net/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744364


이전 07화 미국에는 물가가 높아 월급을 더 주는 회사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