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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27. 2021

6. 슬기로운 미국 공무원 생활 (1)

1) 미국 사무실에서 지니어스 된 썰 2) 워라밸에서 라이프가 공허할 때

나는 현 직장에 매우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직장 중에서도 정말 좋은 자리임은 확실하다! 이민자의 입장에서 차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정말 큰 안전감을 주고, 동료와 상사들도 대부분 다 좋으신 분들이며, 맡은 일도 단순한 업무라 일하기도 편하다.



1) 미국 사무실에서 지니어스 된 썰


나는 여기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장점은 안정적인 직장이라 망할 일 없고 월급 밀릴 일 없고 짤일 일 없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근무하는 기관 자체의 시스템은 무언가 획기적인 계기, 예를 들어 사기업으로 치면 회장님 지시, 정부 지시와 같은 큰 사건이 없고서야 발전이 거의 없다는 점. 특히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아직도 타자기를 쓰고, 수기로 작성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었다. 왜 이렇게 일하는 시스템이 구식이지. 컴퓨터가 있고 프로그램들 정품으로 다 깔려있는데 대체 왜 안 쓰지. 왜 업데이트를 안 하지. 등등 답답한 점이 너무 많았는데 입사 후 딱 한 달 근무하고 나니까 딱 알겠더라. 그 이유는 바로바로


1 하고 싶지 않으니까 (지금 이대로 돌아감 = 문제없음 = 바꿀 필요가 없음)

2 할 수 없으니까 (능력 자원 인재 돈 등의 부족)


내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준 공무원으로 일했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한국의 근무 환경은 엄청나게 효과적이고 빠르고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통합관리시스템이 있어서 노트북이나 심지어 핸드폰에서도 프로그램만 깔면 언제 어디서든 접속되고, 전자결제시스템으로 승인받아 내외부로 전송까지 가능하고, 이메일이나 클라우드 등 정말 편리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 일이 많아도 출장을 가도 휴가를 가도 필요하면 일을 할 수 있는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아주 바람직한 근무환경이겠다.


게다가 일 년에 한 번 공채로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대부분 고스펙 고학력이신 분들이라 뭔가 새로운 시각으로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게 직원들은 항상 고여있지 않고 뭔가 끊임없이 발전하는 느낌이었다. 필요하면 무급으로 야근도 하고 회식도 워크숍도 업무의 연장이다. 나름의 공기업이 그랬으니 사기업은 정말 얼마나 피 터지게 일할까. 게다가 60세 정년퇴직이라도 가능하면 좋지만 50대에 조기 퇴직하시는 경우도 많으니 정말 젊은 시절 등꼴 빠지게 일하는 격이다.


그런데 지금 사무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업무는 회사용 보안 프로그램이 깔려있는 회사용 컴퓨터로만 접속이 가능하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통합시스템은 따로 없고 각 시스템별로 각각 다른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해야 한다. 야근은 승인받은 시간에만 추가 근무를 할 수 있고 당연히 추가 수당은 나오지만 승인을 해주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채용은 빈자리가 나면 열리고, 관리직으로의 승진도 하고 싶은 경우에 빈자리가 나면 지원하는 것이고, 정년은 연령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원하는 경우에만 퇴직할 수 있다. 채용 기준도 아주 간단했다. 고졸 또는 그에 준하는 학력과 사무직 경력 1년.


우리 사무실에는 40년을 넘게 근무한 70세가 넘은 직원도 있고 나 빼고 다 40-50대이시다. 30대인 내가 우리 사무실 옆 사무실 통틀어서 제일 막내이자 제일 신입. 그분이 젊었을 때 일하던 방식은 당연히 수기 작성부터 시작하여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이어지는 이 모든 역사를 겪으신 것이니 그것도 정말 의미 있고 대단하다. 그분들께서 젊으셨을 때는 컴퓨터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고 당연히 컴퓨터 사용방법을 우리처럼 직관적으로 일상적으로 배운 적도 없으시다. 듀얼 모니터를 설치해도 화면을 어떻게 옮기는 지를 모르는 경우가 있고, 엑셀 함수나 워드 단축키의 존재도 모르니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이미 가지고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해야 업무가 빨라지는 지를 모를 수도 있다. 


아무튼 30대의 가장 젊은 피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컴퓨터로 모든 작업 과정을 옮겨놨고 정말 행정직 단순 업무이기에 일도 아주 쉬웠다. 그리고 올해 초, 코로나로 인해 밀려있던 몇 년치의 업무가 쓰나미처럼 몰려들었을 때, 빨리빨리의 민족인 나는 수기로 작성하던 이 업무방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팀장님께 이러 이런 방법도 있으니 계속 바꾸자고 말씀드렸지만, 팀장님께서는 그게 뭔지 잘 모르셔서 공무수행에 적합할지 조금 오랫동안 고민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말까지 투자해서 상담예약을 잡던 분기별 일정표와 고객 명단과 담당자 배정표, 사건 마감일과 보고서 기한 일정표 등등을 전부 공유 파일로 만들어 보여드리면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어서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적극 설득하였고 결국 우리는 내가 만든 시스템을 임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손으로 적던 연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쾌거를 이룬 것이다.


아무튼 학교 졸업요건으로 공부했던 MS Office 자격증 덕분에, 나는 =countif 랑 =datedif 만 알아도, 인쇄하려는데 프린터 오류라서 대충 껐다 켜줘도, 그림판으로 어설프게 저세상 느낌으로 이미지 파일 포스터를 만들어도 컴퓨터 지니어스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거기다가 나 대신 다른 사람들이 더 실수를 많이 해서 내가 업무도 아주 효율적으로 잘하고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 같다. 내가 이제까지 받아온 평가들 중 최상일 듯하다. 뿌듯하기도 하지만 이게 맞는 건지, 내가 노오오오오오력을 한건 아닌데 이런 칭찬을 받아도 되는 건지 가끔 헷갈리기도 하는 느낌이다.



2) 워라밸에서 라이프가 공허할 때


칼퇴하는 직장, 법적으로 차별이 금지된 직장, 철밥통인 직장, 업무 외의 사적인 터치가 전혀 없는 직장, 강요 없는 직장, 휴가나 병가가 자유로운 직장, 워라밸이 완벽하게 가능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워크와 라이프 중 라이프가 없다 워크도 그렇게 많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다. 외로운 타지 생활 퇴근하면 저녁이든 주말이든 혼자서 외롭게 있는 게 더 힘들다. 그래서 알바든 봉사활동이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헤맨다.


나는 한국 직장에 다닐 때에도 회식이 재밌었다. 나는 누가 딱히 뭐라 하든 가고 싶음 가고 안 가고 싶음 안 갔기 때문에 그냥 내 마음은 편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정작 내가 주인공이었던 나의 퇴사 환송회는 안 가고 그랬어서 쫌 그래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나는 가고 싶을 때만 가서 그랬는지 회식을 좋아했다. 좋은 음식점 가서 비싼 밥 얻어먹는 것도 좋았고 사람들이 술 마시면서 긴장 풀리고 조금씩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것도 인간적이고 좋았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기에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취했었는데 (딱 한번 어느 회사에서는 조금 막장인 모습도 보긴 했지만) 속 깊은 개인사를 털어놓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무실 밖의 모습이 새롭고 웃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곳은 회식 같은 모임은 일절 없고 사적으로 연락해서 만나는 사람들은 있는 것 같다. 이게 또 강제성이 없다 보니 아무리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불러도 안 가게 되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식이 그리우면서도 막상 가기는 싫어지는 그런 심리가 있다. 나는 회식은 근무의 연장이다 이런 생각은 안 했는데 막상 개인 시간을 써서 가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귀찮아진다.


이곳에서는 물론 직장은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회식이든 접대든 아무것도 없다. 회식비가 나오지 않고 부서별 부대비용도 안 나오고 탕비실 간식비용도 없고 그렇지만 그래도 단합하는 분위기를 위해 개개인이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탕비실에 간식을 사놓거나 냉장고를 채워놓거나 결혼 출산이나 승진 은퇴와 같이 축하할 일이 있으면 다 같이 모여 파티도 열어주고, 만약 함께 식사하고 싶다면 원하는 사람만 모아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주문해 먹는다거나 하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그것조차 없어져서 너무 아쉽다.


생각해보면 이곳의 사람들은 정말 정말 다양하다. 특히 건강상 신념상의 이유로 개개인이 고수하는 식단도 다양한데 누구는 베지테리안 누구는 계란은 먹고 누구는 데이리 프리 누구는 글루틴 프리 누구는 뭐뭐 알레르기 이런 거 다 고려한다면 회식장소 잡기 엄청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간혹 각자 음식을 가져와서 나눠먹는 Potluck 스타일로 모이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소스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근데 진짜 가끔은 점심시간에 간단히 모여서 밥 먹고 바로 헤어지기 아쉬울 때가 있다. 웃고 떠들고 재밌는 분위기에서 다시 업무 복귀하려니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집중도 안된다. 머릿속은 다 같이 술 한잔 하면 재밌겠다는 아쉬움에 딴생각이 꼬리를 물기도 한다. 나만 그러려나.


한국과는 달리 연말 보너스나 명절 선물 등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소소하게 서로서로를 챙겨주고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주고받고 하는 그들만의 정 있는 모습이 나름대로 또 좋다! 이런 사무실에서 열심히 자신이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과 나도 긍정적인 분위기를 도모할 수 있는 일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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