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정하는 일'이 일의 반이다

우선순위는 감각이다

by 김이직

PM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왜 이건 안 해요?”였다.

“왜 이건 안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왜 했는지”보다 훨씬 많았다.


처음엔 그게 좀 짜증났다.

이미 기획은 다 했고, 개발도 가능했고, 사전에 공유도 했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진짜 잘해야 하는 건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안 만드는가라는 걸.


Product Manager 일명 PM이 하는 일은 결국 선택이다.

모든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할 수 없고, 모든 요청을 다 들을 순 없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서비스 환경에서는 무엇을 ‘먼저’ 할지,

그리고 무엇을 ‘아직’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감각이 일의 방향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결국 PM이라면 '우선순위 감각'이 있어야 한다.


이 감각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다.

신입 시절엔 클라이언트 요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다 반영해야 할 것 같았다.

C레벨에서 내려오는 요청은 꼭 해야 할 것 같았고,

개발자가 고생해서 만든 기능은 왠지 빠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다 챙기려다 보면, 정작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거나,

뭐라도 내긴 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제품이 나왔다.


처음부터 우선순위 감각에 대해 뾰족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딱히 큰 실패를 겪은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해온 감각에 가까웠다.


기획을 해놓고도 ‘지금은 안 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상하게도 손이 안 가는 기획들이 있었고,

데이터상으론 타당해 보이는데 왠지 망설여지는 일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지금 이걸 하는 게, 정말 사용자를 위한 일일까? 아니면 그냥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걸까?’


그렇게 몇 번의 경험을 거치면서 점점 기준이 생겼다.


본질만 보기 시작하자, 판단도 단순해졌다.

맥락이 보이면 우선순위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판단하는 일이 나에게 더 익숙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게 바로 내가 PM으로서 잘하고 있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건 단순히 순서를 정하는 일이 아니다.

무언가를 밀어내는 용기, 그리고 그것에 대해 설득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일이다.

PM은 결국 ‘하지 않기로 한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자원 안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하니까.


예전에는 일을 많이 하면 뿌듯했다.

이젠 조금 다르다.

불필요한 일 하나를 덜어냈을 때, 기획을 접었을 때, 개발을 설득해서 하지 않기로 했을 때

그게 오히려 가장 좋은 일 같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아도, 팀이 훨씬 잘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일을 줄이는 건, 방향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PM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