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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un 27. 2024

어떤 다육이의 짧은 번성기

이런 나지만 다육이는 키우고 싶어 #8

잎꽂이 한 잎에서 새싹이 막 고개를 내밀었을 즈음, 다시 손이 근질근질해졌다. 이 봄이 다 지나기 전에 뭔가 더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내 안의 '일 벌이기 좋아하는 나'가 들썩거렸다. 이는 내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한 다육식물 유튜버가 매일같이 이렇게 말했던 것의 영향이 크다.


"물을 평소보다 많이 준 것 같아요- 이런 분들. 걱정 마세요. 봄이니까 괜찮습니다."

"흙에 올려두고 며칠 지나면 싹이 나는데, 그때 물을 이렇게 살짝 부어주면, 그다음은 알아서 복작복작하게 자라납니다. 봄이니까요"


봄을 맹신하게 된 내게는, 가뜩이나 짧아진 봄, 일분일초라도 있는 힘껏 개체를 늘려놓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여름엔 더위로 녹아내릴 수도 있다니 잎꽂이 만으로는 불안하다. 골든카펫을 늘려야겠다. 어느 날 나는 메스를 쥔 수술방 선생님 같은 표정으로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같은 표정 아니었을까) 핀셋을 손에 쥐고 말했다.


"꺾꽂이."


구석에 있는 작은 녀석을 옮겨주는 장면이지만 대강 이런 느낌으로 핀셋을 이용한다


골든카펫(황금세덤) 같이 잎이 작고 줄기가 가는 다육이는 꺾꽂이로 늘린다. 며칠 동안 물을 주지 않고 좀 말린 상태에서 (*물기가 있으면 잘 안 끊어진다) 줄기를 핀셋으로 '톡' 따서 흙에 '꾹' 눌러 넣어주면 끝이다. 깨끗하게 소독한 가위로 잘라서 심어도 되는데 우리 집에는 식물들 돌보는 데에만 쓸 가위가 아직 마련되지 않아 핀셋을 택했다.


처음엔 한 두 뿌리만 토분 빈자리에 심어보고 관찰을 해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거 다 기다렸다간 봄 다 지나갈 것 같아 일주일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금방 자리가 부족해져, 급한 대로 플라스틱 컵에 누워있던 다육잎들을 내쫓고 거기에 마저 심었다.


"잘만 하면 이거 밭 하나 나오겠는데?"


심은 줄기에서는 새 뿌리가 나고, 본체는 본체대로 새 잎을 틔워내 금세 다시 예쁜 모습으로 자라나기 때문에, 정원이 있는 집에서 잔디 대신 빈 땅을 메우는 그라운드 커버로도 애용된다 했다. 톡, 꾹, 톡, 꾹, 간단하고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골든카펫 무한증식 루프의 단꿈에 빠져들었다. 골든카펫은 포슬포슬한 연두색들이 포트 안에 꽉 들어차 있을 때 가장 예뻐 보인다. 이렇게 계속 늘려나가다 보면 언젠가 도시락같이 넓은 화분에 빽빽하게 키워볼 수도 있을 것이고, 다육 모아심기를 하면서 빈 틈새에 도시락 밭에서 자란 골든카펫을 넣어 주어도 근사하겠지. 꺾꽂이 처음 하는 초보식집사 주제에 꿈만큼은 항상 거창하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손을 움직이는 동안, 금세 화분은 두 개로 늘어났다.


줄기를 뜯어낸 화분과 심은 화분의 모습


꺾꽂이를 위해 줄기를 뜯긴 골든카펫은 어딘지 모르게 부스스해 보이는 것이 꼭 자기 혼자 머리 자른 사람 같기도 하고 (내가 지금 그렇다), 있어야 할 것 없는 안경 벗은 뽀로로 같기도 하고. 원래 맨 위쪽 한가운데에서 어린잎이 보글보글 올라오며 자라나는데 그게 이 식물이 가진 미적요소의 대부분이었나 보다. 뭔가 좀, 보기 그렇다. 신랑 머리 잘라준다고 바리캉 댔다가 땜빵 비슷하게 만들었을 때와 같은, 후회는 막심하나 어찌 되돌릴 수도 없는 현실 앞에 무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2주 뒤


하지만 괜찮다. 머리는 자란다,  생명이 이파리 개수만큼 있다는 다육식물 아닌가.

얼마 지나지 않아 줄기를 끊어낸 자리와 근처 생장점 부근에서는 자그마한 새 싹들이 다시 보글보글 올라왔고, 어느새 얼굴이라 부를 법한 크기로 자라났다. 더 이상 어색하지도 않고, 새로 난 싹이 말갛고 작아 오히려 좋아. 원래 이상의 미모를 되찾았다. 딱 2주 만이었다.


아주 초반에 시험 삼아 심었던 친구는 한 달쯤 지나자 흙을 꽤 단단히 붙들 수 있게 되어있었다

한편, 줄기를 따 새로 심은 골든카펫들은 새로운 개체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하는 다육이들이다.


백이면 백, 꺾꽂이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핀셋으로 끊어낼 때 힘을 너무 주어 짓이기듯 끊어진 부분은 생장점을 다쳤는지 그대로 시들어 죽기도 했다. 그냥 놔두었었다면 쭉 살아나갔을 녀석들인데 좀 미안하면서도, 골든카펫은 작고 자잘한 것들이 군생을 하는 것이다 보니 수십 가닥 개의 가닥 중에 몇 가닥이 죽어버렸다고 해서 크게 안타까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얼마 전,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어떤 다육식물 유튜버가 겨울 돌봄에 대해 그 다육이의 시장가격과 희소성을 기준으로 하느냐 마느냐를 판단하는 걸 보고 분개했는데, 그런 것치곤 나도 크게 다를 바가 없더라. 한 화분에 하나, 가 아니라 한 화분에 여럿을 심으면 그 화분 하나가 하나의 개체로 인식되는 것 같다. 워낙 또 골든카펫은 많기도 하고. 이상한 감각인데, 그렇게 느껴졌다. 신도 인간을 볼 때 그렇게 느낄까. 우리 인간보다 더 큰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은 화분 속, 그 안에 더 작은 나. 이렇게 생각하면 작은 일에 연연하며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네가 이겼니 내가 이겼니 안달복달하며 살 필요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휘둘리다 보면 제 때 뿌리를 내리고 물을 마실 시간조차 놓치고 말 테니까.


이야기가 옆으로 세어버리고 말았는데, 이 글은 다육이 꺾꽂이 하는 이야기다.


나의 골든카펫 꺾꽂이는 약간의 실패는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이때까진 말이다.


투비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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