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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ul 16. 2024

공복을 버티며

아침 4시,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옆에 누워있는 아저씨가 쿠오오 코오 굉음을 내고 있어서도 아니고, 열린 창문 밖으로 빗소리가 들려서도 아니다. 배가 고팠다. 이제 겨우 이틀 째인데 벌써부터 이래서야. 냉장고로 기어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애써 눈을 감았다. 도로 자자, 자버리자, 차라리 잊자.




일요일 저녁부터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다. 이전, 그러니까 출퇴근으로 도합 4시간, 근무시간 7.5시간을 쓰고 있을 때에도 한번 시도했었는데, 회사에 가서 집에 올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저녁만 먹거나, 근무시간 중에만 먹고 퇴근과 동시에 밥을 끊어야 가능한 플랜이라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래서 내 안의 간헐적 단식의 정의는 '생각나면 간헐적으로 하다 흐지부지 되는 단식'으로 굳어갔다. 그러다 어떤 배우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재개하게 되었다.


"칸다 마사키는 정말 어디 병 있는 거 아냐? 갑자기 왜 이렇게 말랐대?"

"본인이 직접 나와서 말했는데 일정 시간만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복으로 있는 단식 다이어트를 했대. 원래 3주 단위로 그만둬야 하는 걸 모르고 일 년 반 계속해버렸다나."

"아아, 그거. 한국에서는 간헐적 단식이라고 부르는 건가 보다. 나도 다시 해볼까. 안 그래도 요즘 배랑 허벅지 장난 아닌데."

"몇 킬론데?"

"(재어보았지만) 몰라, 안 재봐서.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것도 무섭단 말이야. 그러니까 너도 협조해. 저녁밥은 19시까지만 먹을 거니까 그 이후로 내게 뭘 권하거나 하지 말아 줘."


그러려고 한 말이 아닌데 입이 방정이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선언 비스무리한 말에 나도 놀라고 있는데 남편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후훗, 웃었다.


"뭐야, 왜 웃어."

"얼마나 갈까 하고."


혼자 조용히 생각만 하고 있어야 했는데. 말로 뱉어버리면 안 됐다. 행여 조기종료라도 해버리면 얼마나 깐족댈까.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한테 옮았는지, 요즘 깐족력이 늘었다. 급하게 덧붙였다.


"너무 스토익하게 하면 안 좋을 수 있으니까, 평일 위주로 느슨하게 할 거야."




16시간 동안 공복을 유지하고 8시간 동안만 먹는 간헐적 단식. 이것저것 제한을 너무 많이 두기엔 내가 너무 모르기도 하고,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시간만 맞추고, 어깨 바르게 펴기와 복식호흡을 운동 인 셈 치고 병행할 것이다. (너무 뻔뻔한가)


이틀 간의 소감. 저녁을 일찍 먹는 것은 간단하다. 다량의 샐러드와 수프를 곁들이면 포만감을 얻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아침이다. 일찍 눈뜨면 눈 뜨는 대로 배가 금세 고파진다. 어제는 깐족 집행자를 출근시킨 뒤 물만 한잔 마시고 다시 눈을 붙였다. 밥을 먹으려면 4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지만, 날이 흐려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배가 고파 종종 눈이 떠졌지만 공복을 잊으려 그렇게 자다 깨다 하며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첫 밥을 먹었다.


신라면이었다.


아무리 식단을 신경 안 쓴다 해도 첫 끼니부터 너무 거하게 먹는 기분이 들어 오늘은 미소시루에 밥과 낫또, 계란프라이로 식사를 할 것이라고 미리 내 안에 못을 받았다. 이건 내 의지표명이다. 그런데 기다려야 할 시간이 너무 길다. 식사는 11시부터 19시까지. 그나마 11시 땡 하자마자 먹으면 텀이 어중간하니 그래도 12시까지는 시간을 미뤄보는 게 좋겠지. 시간을 잘못 맞추면 기한 내엔 배가 불러서, 밤엔 배가 고파 잠을 설칠 수도 있다.


오늘도 깐족 집행자를 출근시키고 다시 자리에 누워보았다. 잠은 오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공복은 더 선명해졌다. 물을 마셔도 그때뿐이다. 물을 씹어서 마셔보기로 했다. 씹어봤자 물이다. 영리한 내 위장은 다 알고 있다.


컴퓨터를 켜 브런치의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부지런히 옮겨 적었다. 배고픔, 공복, 꼬르륵, 이런 생각밖에 안 나지만 이 공복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사건을 정리하고 있으니 허기가 조금 잊히는 것 같기도 하다.


공복을 승화시키는 데에는 글쓰기가 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닿았다. 눈 꾹 감고 으으 배고파 하고 보낼 시간을 유효하게 사용하는 데에도. 앞으로 배가 고플 때마다 글을 쓸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 매거진, '공복을 버티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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