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버틸만하다. 몸이 익숙해져 오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배고픈 나머지 허기를 인식하는 뇌의 어디 뭐가 마비되어 버린 것일까.
어제는 계획대로 쌀밥에 계란프라이, 먹다 남은 미소시루에 낫또라는,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간소한 라인업인데 평소보다 더 달게 느껴졌다.
설거지를 하고 원래 자리에 앉으려다가 다시 일어섰다. 사람이 참 웃긴 게, 생활에 제한이 생기고 보니까 이 '먹어도 되는 8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시간을 그냥 놓쳐버리면 안 될 것 같아 간식을 찾아 나섰다.
8시간 동안 '먹어도 된다'는 것이지, '먹기만 하라'는 건 아닌데 말이다.
냉동실에 넣어둔 초콜릿을 찾았다. 평소엔 심심풀이로 앉은자리에서 오독오독 한 봉지 다 먹어치운다. 오늘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다이어터인데. 아, 정정. 시간제한이 있는 다이어터다.
트레이를 잡아당기자 데굴데굴 초콜릿들이 딸려 나왔다. 그중 한알을 입에 넣었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혀가 어금니로 데려가더니 엄청난 기세로 초콜릿을 분쇄해 삼켜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엔 다르겠지. 한 알 더 밀어 넣었는데 이번이라고 다르겠나. 첫 번째 초콜릿과 같은 길을 걷고 말았다.
아아, 이것이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이 힘. 참 하찮다.
마지막으로 한 알 더 입에 넣고 이번엔 바로 입천장을 내려 초콜릿의 어금니행을 막았다. 입천장과 혀 사이에 끼인 초콜릿에서 스며 나오는 단맛을 느끼며 남은 초콜릿들을 힘겹게 냉동실에 집어넣었다. 휴. 하마터면 다 먹을 뻔했네. 그 사이 입안의 초콜릿은 또 스르륵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나 초콜릿 왜 먹었을까.
허기를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맛을 음미하는 여유나 감동도 없었다.
그냥 '하지 마'의 반동 아니었을까.
늦게까지 컴퓨터 하지 마, 집에 빨리 와, 술 좀 작작 마셔, 이런 것들과 똑같다. 늦게까지 컴퓨터를 하고 나면 다음 날 피곤해 일어나기 힘든 것도, 늦게까지 돌아다녀봤자 귀갓길이 위험해지기만 하는 것도, 마실 땐 즐겁지만 조금씩 몸이 망가져 가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잘 멈춰지지도 않고, 멈추려고 하는 엄마의 잔소리는 기성세대의 영향력 행사라고 생각하면 하지 말란 걸 하는 것 자체가 더 재밌고 짜릿하다.
그래서 그런가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먹지 말라던 것을 먹어도 된다는 시간 내에, 다 먹지 말자는 초콜릿 세알을 먹는 행위가. 맛은 그냥 달았던 것 밖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진짜 필요를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어제와 달리 배가 고파 일어난 것도 아니고 딱히 괴롭지도 않았는데 남편 출근배웅하자마자 '슬슬 식빵을 토스트 할까?' 생각했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항상 그 시간에 그렇게 해서 먹어왔으니까.
정의가 되어버린 쓸데없는 습관이 더 있을 것 같다. 찾아내고 나면 어디서 가위라도 가져와 싹둑싹둑 잘라내야지. 간헐적 단식으로 내 여분의 살뿐 아니라, 나의 생각과 행동을 더 적절한 곳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도 함께 덜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배고프다. 슬슬 밥을 먹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