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나는 '무슨 날'에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는 것 같다. 일본에선 까만 날짜에 불과했던 올해의 긴 추석연휴 내내 아침에 눈을 뜨면 알 수 없는 동요를 느낀 것이 증거다. 가벼운 물기를 머금은 찬 공기와 베란다 창틀에 서 빨래를 탈탈 털어 너는 건넛집 아줌마, 요즘 유독 자주 들려오는 쪼로쪼로삐로쪼로 이름 모를 새의 화려한 울음소리. 언제나와 같은 감촉, 풍경, 소리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묘하게 다른 기분. 우리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운 작은 엄마, 작은 아빠에게 뭐야, 지금 형이랑 형수만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어서들 일어나시고 한마디 해야 속이 시원해질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아침부터 고사리나물에 막걸리를 껄껄대며 나눠마시고 나면 금방 마음이 풀리고, 벌게진 얼굴로 주섬주섬 배드민턴 채를 찾아 우르르 나가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오늘부터 추석연휴래. 긴 사람들은 다다음주까지 쉰다던가.'
'부럽다...'
'그래서 그런가, 이상하게 아침부터 술이 마시고 싶네. 추석 기분인가 봐'
우리 집 일본인은 내가 말하는 추석 기분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인지, 내가 술을 마시면 밝고 희망차지는 습성이 있으니 어쩌면 약간의 낮술로 그간 있었던 여러 일들로 인한 우울감이 해소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적당히 마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업무로 돌아갔다.
그렇게 시작된 낮술.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닌데 기분으로 시작된 일은 기분이 끝나야 끝난다. 나의 추석 기분은 한국의 달력과 연동되어 흘러갔다. 밥 하는 게 지겨워 혼자 먹는 점심은 대충 때우는 게 일상다반사였는데 이상하게 번거로운 것도 없다. 스팸을 정성스레 잘라 계란물을 묻혀 굽고, 고추기름을 내고 냉장고 속 야채를 푸짐히 넣어 만든 부대찌개도 기분 하나로 뚝딱. 그렇게 일주일을 실하게 살아내고 나서야 기분의 힘을 재차 실감했다. 2킬로가 쪘다. 어쩐지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다. 기분은 정말 대단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왔다. 여기 갓 이사 왔을 때에는 집안에 있는 것이 갑갑해 방향만 정해놓고 무작정 걷기를 자주 했다. 시골은 교통 인프라가 좋지 않으니 모두 차를 타고 다닌다. 곧게 뻗은 인도엔 나 혼자뿐. 지금은 걸어야 할 일이 있을 땐 그 일을 없애버린다. 걸어 다닐 기분이 아니게 됐다.
그런 내가 옷을 챙겨 입고 거리로 나왔다. 여전히 인적 없는 거리를,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경신하고도 여전히 손바닥만 한 옷에 몸을 끼워 넣을 수 있는 남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꽤 오래 걸었다. 바퀴가 아닌 내 발의 속도로 걸으니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덩굴로 휘감긴 허름한 레스토랑이 저녁엔 꽤 근사한 조명으로 그럴듯한 데이트 스폿처럼 보인다는 것이나, 날벌레들은 흰 옷에 더 잘 꼬인다는 것 같은 것들. 노을을 묻히고 길게 뻗은 구름들이 설마 지진운은 아닐까 걱정하는데 어디선가 금목서 향이 흘러왔다. 어느 집 마당에 기르고 있는가 잠시 멈춰서 담장 안을 건너다보아도 금목서의 'ㄱ'도 보이지 않는다. 향이 진해 만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다 했던가. 그런 꽃을 찾아보려 애쓰는 것도 무용한 일이라 다시 걸음을 떼었다.
그날 몇 번인가 보이지 않는 금목서의 향기를 맡으며 다시 한번 기분의 힘을 느꼈다. 진짜 금목서 향인가? 아니면 기분 탓인가? 어쨌든 술보다 낫네. 기분은 삶에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걸었다 섰다 콧잔등을 실룩이다 옷을 탈탈 털면서. 어둑어둑해진 길을 되돌아오며 요 며칠 동안 들어버린 나쁜 습관도 내일은 기필코 털어내야지 마음먹었다. 어째 그러고 싶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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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팝업 전시 <작가의 꿈>에 저서 <취미는 채팅이고요, 남편은 일본사람이에요>와 글 <아직 오지 않은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책은 직전연도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버프로 무려 센터 자리에 놓여있는데 (동영상보고 상하좌우 숫자 세어봄...ㅎ...) 제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흐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