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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un 27. 2023

브런치스트 김이람

첫 잡담

6월 23일 오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제일 먼저 한 것은 필명을 새로 정하는 일이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1년 가까이 신변잡기를 적어왔는데, 거기서 쓰던 이름을 쓰려하니 이미 다른 작가님이 쓰고 계셨기 때문에, 이 김에 좀 더 유니크하고 사람 이름에 가까운 필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쥐어짜 내도 좀처럼 적당한 것이 생각나지 않다가, 문득 모 걸그룹이 영어 문장의 철자를 재배치해 팀명을 정한 것을 떠올리고, 노트를 펼쳐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단어들을 몇 개 적어내려 갔다.


내 이름,

블로그 닉네임,

내가 지어준 강아지 이름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중복되는 것들은 지워주고 남은 것들만 추려 남편에게 건넸다.






삼십몇 년간 일본어만 쓰고 살던 남편은 요즘 NHK의 한국어 학습 방송과 듀오링고라는 언어학습 어플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어 기초 학습서를 한 권 사줬는데 책상 앞에 각 잡고 앉아하는 공부는 영 취미에 맞지 않았는지 일주일쯤 지나자 책을 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플과 티브이방송을 이용하면서는 벌써 2개월간 매일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을 한국어 공부에 할애하고 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 때 어쩔 수 없이 의미나 어감에 집착하게 되고, 그 때문에 유니크하지 못한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글을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 애너그램을 맡기면 어떤 조합을 만들어 낼지 궁금했고 그것이 내가 원한 신선함과 연결되리란 기대도 있었다.


"이 안의 글자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줘"


노트와 볼펜을 건네자 남편은 싫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필명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남편도 알고 있었고 이 이상한 과제를 무리 없이 소화하기엔 남편의 한국어 실력은 너무나도 작고 소중한 레벨이었다.


"정답도 없고 그냥 궁금해서 그래. 내가 만든 건 영 재미가 없어서"


괜찮으면 쓸 요량이었지만 일단 안심시키기 위해 그냥 호기심 때문에 그런 것처럼 둘러댔다.

그리고 잠시 뒤, 남편은 이하 2개의 조합을 만들어 냈다.


이람견 (개?)

민결스 (뉴진스의 영향?)


내 머리에선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열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쓰기엔 무리가 따를 것 같아 마음에 묻어두려다가, '이람'만 떼서 내 성에 붙여보니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구글에 쳐봐도 동명이인이 나오지 않아서 이거면 쓸만하겠다 싶었다.


남편에게 이걸로 하겠다고 했더니 이유를 궁금해했다.

동명이인도 없고, 어감도 딱히 나쁘지 않은 데다 '사람(4람)에서 딱 두 발짝 정도 모자라는, 아직 덜 됐지만 성장하고 싶은 이람(2람)'이라는 의미부여도 되지 않겠냐 했더니, 쓴웃음을 짓고는 커피를 끓이러 갔다.


어쨌든 그 길로 나는 김이람이 되었다.






다음은 프로필 작성이었다.

이름이 해결되자 고민스러웠던 것은 '직업'이었다.

내 공식적인 직업은 '주부'일 것이나, 이름 바로 밑에 들어가는 직업으로 '주부'를 내세우고 싶진 않았다.

전문성이 있을 만큼 가사에 박학다식한 것도 아니고 겨우 밥해먹는 불량가사인이 함부로 나 주부요!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직업들도 쭈욱 둘러보는데, 작가지망생이라고 하기도 뭐 하고, 에세이스트라고 하기엔 부끄러워서, 브런치스트라고 적었다.


작가 신청을 할 때 300자 이내로 써야 하는 작가 소개가 있었지 않은가.

거기에도 맨 끝에, 직업이 없는 내게 브런치스트라는 직업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썼다.

'브런치에 에세이 쓰는 사람'이란 의미로 적었는데, 꿈이 너무 작은가?


하지만 '브런치스트 김이람'이란 울림은 왠지 기분이 좋다.

아직은 브런치에 글을 쓰려하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편안하게 글을 쓸 수가 없지만 말이다.


히히후 - 히히후 -


내일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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