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

무엇이 나를 살게 만드는 걸까

by 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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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낮잠도 잤다. 졸리지 않아도 일부러 내가 잠을 찾았다. 오늘은 왠지 그런 날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었다. 바로 누워서 천장을 보다가 슬쩍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므로,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질문이 대답을, 대답이 또 질문을 데리고 오더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엊그제 읽었던 이승우 작가의 소설 『지상의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걷기 시작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 않았다면 그는 걷지 않았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걸었으므로 걷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했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통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벗어났다.


늘어지게 자고 싶은 날,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했다. (마침 반가운 저녁 약속이 있기도 했고, 너무 오래 누워있어 허리도 아팠으므로, 조금 걷고 싶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사당역 지하철 플랫폼에서 춤추는 청년을 만났다. 오늘 언제부터 여기서 음악을 틀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분명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면 꾸벅 인사를 하고, 박수를 유도했고, 연예인을 준비하고 있다 말했다가, 본인의 힘든 삶을 이야기하며 사는 게 힘들어서 이렇게 춤을 추러 나왔다고 말했다. 신기한 표정으로 그의 모습을 눈에 담는 사람, 웃는 사람, 아무 관심도 주지 않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 그곳에 있었고, 진지한 표정으로 지폐 몇 장 건네는 어른도 있었다.


역무원이 내려와 그를 제지하기까지, 지하철이 두 대 지나갈 시간 동안, 그는 내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예인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는 없게 만드는 그의 춤사위를 기억하면서 생각했다. ‘무엇이 저 친구를 춤추게 하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걸을 수밖에 없었던, 아무것도 아닌 일을 했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통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던 소설 속 주인공을 떠올렸다. 춤을 추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그것 말고도 필요한 일도 없음을.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짧지만 긴, 하루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이 나를 일하게 만드는 걸까, 무엇이 나를 살게 만드는 걸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기 전에는, 어쩌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급할 건 없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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