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이 최고의 정교함
속도보다는 방향. 참 많이 듣는 말이다.
며칠 전, 지인과의 대화 중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넌 별로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나도 많이 휘청거리고, 속으론 항상 크고 작은 너울을 탄다. 웃으면서도 외롭고, 즐겁지만 슬픈, 아주 역설적인 감정들이 역동적으로 오고 갈 때도 있다. 그런 와중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의 평안을 찾는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한 발짝 물러서서 나의 본 모습을 직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먼 과거의 나를 불러내 물었다. ‘진짜 흔들리지 않았었나?’ 잘 모르겠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똑 부러진 답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렴풋한 확신은 있었다.(물론, 지금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삶의 과제들이 분명 어떤 의미로든 미래의 나에게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걸었다.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때론 지쳐 가만히 앉아있기도 했지만, 밝고 가벼운 기운으로 자유롭게 걸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서있다. 속도와 방향, 분명 둘 다 중요하지만 그 둘을 결정짓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먼저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어느 방향으로 또는 얼마의 속도로 이끌어 가는가?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난 아직도 멀었지만,)
점점 본질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본질에 가닿기까지 질문한다. 본질에 충실할수록 사고는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단순함이 최고의 정교함임을 믿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법론을 담은 책은 많지만, 내게 맞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내가 던지는 ‘왜?’라는 물음의 내용을 나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되려고 하는가? 왜 그길로 가려고 하는가? 내면으로부터의 이런 물음에 분명한 평가 기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 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을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니체, <우상의 황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