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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일단 하는 게 먼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일이 그다음.

by 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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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익숙하고 능란하게. 자세하고 정확하게. 분명하고 또렷이. 아주 적절하게. 아주 알맞게. 아무 탈 없이 편하고 순조롭게. 유감없이 충분하게. 아주 만족스럽게. 예사롭거나 쉽게. 아주 멋지게. 아름답고 예쁘게. 충분하고 넉넉하게.


<잘>이라는 단어 밑에 달린 설명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묵직한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 글자 속에 저 많은 뜻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빈틈없이 채워진 주머니 같았다.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어깨 위에 짊어졌던 건 <잘>이라는 한 글자가 아니었을까. 하루하루의 걸음들이 그토록 무거웠던 건 잘 살아야 한다는 책임의 무게 때문이었고, 맨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잘>이 크게 한몫하고 있었을 터였다. 펜을 들어 ‘잘 살아야 한다.’라고 적고 손바닥으로 슬쩍 <잘>이라는 글자를 가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살아야 한다.’만 남은 종이를 바라보며, 이미 주어진 삶을 문제없이 살아내고 있는데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했다. 만점은 아니지만, 낙제는 더더욱 아니어서 즐기며 살만한 인생이기에.


‘잘 행복하자’라는 말이 어색한 이유는, <행복>은 <잘>의 문제 따위가 아니기 때문일 게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감에 <잘>이라는 말이 꼭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불현 듯 떠오른 의심에 나름의 확신을 더하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 <잘>을 버리고, 일단 하는 게 먼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일이 그다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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