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곧 삶, 책임, 의지, 행동과 같은 무엇들의 최초의 씨앗
책 한 권에는 몇 개의 단어가 들어 있을까? (비스듬히 누워 이런 질문을 생각 할 수 있는 일요일 오전은 참 좋다.) 마치 손에 들린 책 속의 글자들이 가슴을 지나 머리를 향해 차례차례 줄지어 올라가는 것 마냥, 머릿속 하얀 도화지가 빼곡히 까만 단어들로 채워졌다. 이리저리 줄을 세워 종이가 원래 흰색이었는지 검은색이었는지 분간하기 힘들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
책을 놓고 손에 지우개를 들었다. 한 귀퉁이에 있는 단어들을 슬쩍 밀어 없앴다. 다시 빈 공간이 생겼다. 이참에 하나씩 지워보자 마음먹었다. 먼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그다음엔 중요하지 않을 것들을. 그리고는 나에게 덜 의미 있는 것들을 덜어냈다. 마지막으로 남고 남은 것 중에 조금이나마 더 소중한 것들을 골랐다. 채우는데 걸렸던 시간의 서너 배는 족히 시간을 비워내는데 들였다. (그래도 괜찮다. 일요일 오전이니까.)
아무튼, 어지럽게 쓰고 지워진 자리에 두 개의 단어만이 남았다. '나' 그리고 '자유'. 이 둘은 그대로 있어야만 했다. 지울 수 없었다.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유 덕분에 살아간다. 내가 있어야 자유가 의미를 갖고, 자유가 있어야 나도 존재한다. 자유는 곧 삶, 책임, 의지, 행동과 같은 무엇들의 최초의 씨앗이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가 "(인간이란) 자유라는 거지!"라 말했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본인의 묘비명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썼듯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가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라 말했듯이. 나는 자유롭기 때문에 기꺼이 외로울 수 있고, 또 자유롭기 때문에 무한히 행복할 수 있는 걸 거다.
참 자유롭게, 일요일 오후를 맞는다. (BGM은 김광석의 ‘자유롭게’)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