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림자,

나만의 색깔로 살자

by 김봉근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어떤 의미로든 내면의 호수에 돌을 던지는 그런 날. 화창한 가을, 매일 걷던 길 위에서 만난 나무 그림자가 너무나 예뻤다. (어디 도망가지 않으니, 카메라도 아주 천천히 꺼냈다.) 무채색의 그림자가 마치 색이 있는 것처럼 알록달록하게 느껴졌다. 세계지도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푸른 바닷물 위로 흰 구름이 떠있는 모습이란 생각도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시각, 그 자리의 나무 그늘은 나를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녁 퇴근길, 장석주 시인의 책에서 운명처럼 이유를 찾았다.

“여름의 타오르는 햇빛이 증발한 자리마다 엷은 그늘들이 고즈넉하게 고여 있다. 여름 해변들은 한산하고 단풍드는 가을 산은 사람들로 붐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가는 일이 잦다. 연일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얀 햇솜을 뜯어말리는 모양새다. 무성한 가지를 공중에 뻗친 나무들이 제 아래 떨어뜨리는 그림자들도 유순하다. 무더위와 습기, 열대야에 시달리며 신경질이 잦던 여름은 갔다.”


가을이었다. 여름이 슬쩍 자리를 비우는 틈에, 그늘마저 고즈넉하게 만드는 가을이 벌써 이만큼이나 와있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노란색 은행잎, 붉은 단풍, 황금빛 들녘, 분홍색 코스모스, 갈색 낙엽, 빨간 사과, 노란 호박. 하늘도, 바람도, 햇살도 자연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향기로워진다. 그래서 색의 계절 가을엔, 그림자마저 색을 입나 보다.


문득, 나만의 색깔로 산 날이 얼마나 될까. 스스로 질문해보고는 손가락으로 꼽히는 그 날들을 세어본다. 누군가의 멋진 모습을 보고 닮는 것에만 열중하며 지냈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하루하루 삶의 이유가 나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디로부터 왔는지 생각한다. 모두가 본연의 아름다운 색을 찾아가는 가을.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나만의 색깔로 살자. 진짜로 살자 굳게 약속한다. (나하고,)


가을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갈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붙잡을 수만 있다면 한동안 곁에 두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온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D,



어서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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