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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근 Sep 25. 2015

등산 철학.

진정으로 나를 찾아가는 시간


올해 서른. 가끔 누군가가 취미를 묻는다면 등산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1년에 서너 번 산을 찾는 게 전부인 초보 등산객이지만 세상 모든 것에 철학이 존재하듯, 나의 등산에도 나름 확고한 생각이 있다.


등산(登山)이란 '과정을 즐기는 활동'이다.


처음 산에 오르는 사람은 과정보다 결과를 몹시 중요시 여긴다. 가파른 경사와 계단, 힘든 고생을 참고 이겨낸 후 얻는 성취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감탄한다. 이 높은 곳을 내가 올랐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한번 두 번 산에 오르다 보면 결과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게 된다. 산을 오르면 꼭 정상을 밟아야 한다는 법도 없거니와 동네 뒷산만 하더라도 몇 개의 탐방로가 설치되어 있는데 꼭 정상으로 향한 길을 찾아야 등산을 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산에 다녀오고 나면 '몇 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어!', '이틀 만에 지리산을 종주했어!'와 같이 중요하지도 않은 시간을 강조했다. 이는 등산도 다른 사람과의 경쟁으로 생각하는 성격 급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들이 아닐까? 등산은 그 누가 뭐래도 나만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 누구보다 천천히 걷는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자리에 최대한 오래 머물러 앉아 있으려 하고, 주변을 더 많이 보려 노력한다. 같은 길이라도 처음과 두 번째, 세 번째의 느낌이 다르듯이 그 자리에서 하게 되는 생각들은 엄연히 다르다. 산은 언제나 그대로지만, 그 위를 밟고 서있는 내가 변하기 때문이리라.


결국 차이는 등산의 목적에서 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상에서의 경치를 최고로 꼽고,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주 등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작하는 그 출발부터가 아름답다. 흐르는 계곡이 아름답고, 발에 치이는 돌부리조차 어여쁘다. 모두가 좋아하는 꼭대기는 다음번에 오르면 될 일이니 말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저 높은 곳의 무엇인가를 향해 앞만 보며 달린다. 늘 바쁘고 지치고 힘들다. 하지만 조금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면 전혀 다른 새로움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산은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준다.'는 글귀를 참 좋아한다. 처음에는 그 선물이 좋은 날씨와 경치인 줄만 알았지만 지금은 진정으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선물 받고 있는 느낌이다. 등산 그 자체가 스스로에게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말이다. 청명한 가을. 그래서 오늘도 난 산에 갈 궁리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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