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은 그 자체로 이미 적극적인 행위
횡단보도 앞 카페, 넓은 창문을 마주 보고 앉았다. 눈부신 가을볕, 짙은 커피 향에 취해 나른해질 대로 나른해진 오후는 언제나 옳다 느끼며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사실, '커피보단 맥주가 좀 더 어울려'라고 생각하며,) 창문 너머, 빨간색 불이 켜진 신호등 앞에 사람들이 서있다. 모두 한 곳을 바라보며 신호를 기다린다. 파란불로 바뀌자 모두 바쁘게 각자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고 신호등은 다시 빨간색으로 변했다. 시작, 멈춤, 다시 시작, 그리고 다시 멈춤. 신호등 앞에서 우리는 늘 멈춰 서고, 또 걷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삶을 여행하며 나를 멈추게 하는 신호등을 몇 개쯤이나 만나게 될까 생각했다. 백 개? 천 개? 머릿속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세어보다가 얼른 포기했다. (지나온 신호등은 모두 파란불로 바뀌었을 것이고, 또 앞으로 만날 신호등은 바뀔 때까지 기다릴 것이므로,)
묵묵히 색깔을 바꿔내 사람들을 안내하는 신호등을 보며 살아감의 자세에 대해 배운다. 가만히 보면, 파란색보다는 빨간색 불이 켜져 있는 시간이 서너 배는 길다. 앞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멈추어 서서 자기를 돌아보고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언제나 파란불만 켜져 있는 신호등은 없다. 그렇다고 언제나 빨간불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때가 있음을 알고 준비하며 기다린다. 그래서 멈춤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과 주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메시지가 그 속에 있다.
얼마 전, 주역을 해석한 조우성 변호사의 글에서 오묘한 멈춤의 의미를 만났다. 그는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바, 그 움직임을 '멈춰야' 제자리에 설 수 있고, 가만히 있으려는 것은 계속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 바, 그 가만히 있으려 함을 '멈춰야' 움직일 수 있다."라 했다.
멈춤은 그 자체로 이미 적극적인 행위다. 남들이 모두 뛰고 있다고, 나만 여기 멈춰있는 것 같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각자의 신호등 앞에 서있다. 파란불이 켜지면, 힘차게 걸음을 옮기면 될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발을 신나게 내디딜 수 있도록 충실히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뿐이다. 화.이.팅.
+덧, 글을 써놓고 보니 왜 신호등 색을 초록불이 아닌 파란불이라고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뭐,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