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오늘은 절대 급하지 말자

by 김봉근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결국 비가 쏟아진다. 퍽퍽하고 건조한 계절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비 오는 날엔 파전에 막걸리를 먹어야 한다는 공식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학습이라는 행위는 정말로 무서운 것이어서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는 비를 바라보며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지글지글 구워지는 전을 생각한다는 사실이 참 웃기면서도 즐겁다. 여러모로 빗줄기가 고마운 이유다. 요 며칠 다시 여름이 오려나 싶었는데, 이제 진짜 가을이 시작될 것만 같다. (가을을 위해 축배를 들자,)


만약 내가 학생이었다면 1교시부터 9교시까지 내리 책상에 엎드려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날씨. 1년에 몇 번이나 되려나. 이런 날엔 집 앞 카페 의자에 깊숙이 걸터앉아 투명한 유리 반대편에 맺힌 물방울을 멍하니 바라보고 싶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책을 보다가 졸기도 하고, 늘어지게 하품도 해보고, 두 팔 벌려 기지개도 켜면서, 지나가는 시간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늘리고 늘려서 주머니에 넣어 숨겨 놓고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잡아두고 싶다. 그래서 그런지 커튼 친 반지하 자취방같이 어두워진 오후의 시간은 참 더디게 흐른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조금은 나른해도 좋은 날. 오늘은 절대 급하지 말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조금 맞아두어야겠다. 머리 위로 노크하듯 똑똑 떨어지는 가을비의 이야기를 기억해야지.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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