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10년쯤 전에, 신촌의 한 커피숍에서 난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어린 학생이, 이제 막 서울에 올라와서 커피라는 걸 처음 먹어보는 내가 말이다. 사실 메뉴를 고를 수가 없어서 가장 익숙히 들어왔던 이름을 말했을 뿐인데, 카페 종업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에스프레소는 아주 진한 커피인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나는 당연히 그러겠노라 대답했고, 아주 작고 귀여운 잔에 담긴 쓰디쓴 커피를 마셔야 했다. (물론 다 마시지 못 했다.) 그 후로 에스프레소를 먹어본 적은 없다. 친구들과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면 서로 피식 웃고 만다.
갑자기 오래 전의 커피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용윤선 작가의 <울기 좋은 방>의 한 문장이 나를 풋풋했던 그 시절의 기억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어울리는 커피가 있듯 만드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커피도 있다. 에스프레소는 일생이 아득하기만 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은 내 것이 아니지만 기억은 내 것이기에 그 시절이 소중할 뿐이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에스프레소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커피인 것처럼.” 꼭꼭 손으로 눌러 읽으며 작가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 커피숍에 들렀다. 지금은 쓴 커피도 곧잘 마시게 되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는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이제 우리에게 커피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윽한 커피 향기가 둘만의 공간을 채우고, 달다가도 쓴 커피 같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게 한다. 커피는 혼자만의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이는 소통의 매개체가 되는 요즘 세상이다.
용윤선 작가는 “맛있고 새로운 것을 함께 나눠먹는 일은 몸의 온도를 조금 높이는 일이다.”라 말했다.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커피 한 잔에 큰 위안을 받는 존재인가 보다. 아니면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우리가 서로에게 믿음과 여유가 되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쪼록, 깊고 깊은 커피가 나와 너, 우리의 주변 온도를 조금씩 높여주기를 바라며. 내일은 따뜻한 라떼를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