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기.

급한 건 세상만으로 충분하다

by 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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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사부작사부작 발걸음을 옮긴다. 어깨를 스쳐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남긴 고단하고 깊은 삶의 발자국들을 읽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내가 남긴 흔적을 돌아보곤 한다. 집에서 학교로, 직장으로, 약속 장소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그렇게 우리는 두 발로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하루 여행을 마치고 지친 몸과 함께 돌아오는 길. 가을처럼 타오르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가 아니라, '좀 더 진짜 나에게 가까워지는 법'을 생각하는 것을 인생의 화두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 질문한 정여울 작가가 떠올랐다. 어느 신문에서인가 읽어 두었던 내용 같은데, '길 위의 나'가 '진짜 나'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하며 걸었다. 대체 그 방법이 무엇인지 깔끔하게 정리되진 않았지만, 지하철역 계단을 오를 때부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기까지 10여 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 참 좋았다.


그렇다. 걷는 시간은 생각의 시간이다. 길 위에서 오롯이 나는 혼자임을 깨닫고, 흐르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낀다. 마음대로 시간을 주물러 느리게 혹은 또 빠르게 지나가게 할 수도 있다. 괜히 내면을 가득 채우기도, 텅 비우기도 하면서 스스로에게 닿을 때까지 질문하고 답한다. 나를 객관화해서 보는 노력과 함께 진짜 내 모습을 찾곤 한다. 또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친구 삼아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웃음과 여유를 선물 받는 경우도 많다. 오늘의 내가 그랬으니까. 내일의 나, 내일의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적는다.


늦은 밤, 김중혁 작가가 쓴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의 문장이 비슷한 의미로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사실, 난 이 책 제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고, 어제와 오늘의 변화가 10년 동안의 변화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뀐다고 나까지 급해질 필요는 없다. 급한 건 세상만으로 충분하다. 새해에 세운 나의 계획을 점검해 본다. 너무 도전적인 것은 아닐까. 너무 빨리 걸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목표가 너무 거창한 것은 아닐까.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달은 30일이고, 1년은 12달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의 목표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성실하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행복해지면 된다. 주름을 만들 듯 천천히 내 속도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걸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기왕 걸을 거라면 천천히, 성실하게 걷자. 급한 건 세상만으로 충분하다. 누가 뭐라 해도, 천천히 내 속도로 걷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D


+사진은 지리산에서 내려와 남원 어디 즈음. 아, 산에 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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