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맥주,

무조건 파이팅

by 김봉근
쌩맥주.JPG

“쌩-맥주 한 잔 주세요.”

내가 맥주를 시킨 것이 아니라, 쌩맥주의 쌍시옷(ㅆ)이 나로 하여금 본인이 시켜지도록 했다. 아마 이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냥 생맥주가 아닌 쌩맥주였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쌍시옷(ㅆ) 발음이 새롭게 다가왔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욕과 연결되는 대표적인 발음이지만, 무언가 그냥 생맥주보다는 더 시원하고 상쾌할 것 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사람이 미치도록 미울 때 우리가 쌍시옷을 등장시켜 욕을 하면서 쓰디쓴 현실을 이겨내는 것처럼, 쌩맥주가 날 대신해 불공평한 세상에 욕이라도 한 바가지 쏟아부어주는 것 같은 위안을 주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적당한 이유를 댈 수 없어, 급하게 만들어낸 것 일수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의 신현림 작가는 시원한 맥주를 마실 때면 바다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고 하면서 “눈물이 약간 글썽일 정도의 맥주가 몸 안으로 파고드는 기분. 내 존재감이 물을 엎지른 것처럼 흥건해져요. 대지의 뜨거운 기운과 슬픔이 밀려들어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 우는 걸 느꼈죠.”라고 말했으며, 윤병무 시인은 <맥주>라는 시에 “신의 갈증을 인간이 풀어준 맥주를 마셔요. 그 덕에 인간은 가끔 행복해요. 황금을 녹여 마신다고 이 맛이 날까요.”라 표현했다. 바다를 마시는 기분, 황금을 녹여 먹는 맛이라니. 이 정도면 가히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그날의 맥주는 너무나 시원했다. 그게 쌩맥주였기 때문인지, 삶이 고단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앞의 작가들처럼 맥주를 음미하며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순 없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차디찬 맥주 한 잔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쌍시옷(ㅆ)을 온몸으로 품고 있는 쌩맥주와 함께, 하루하루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무조건 파이팅. 쌩맥주에 쌩라면, 쌈밥과 쏘주 한 잔이 그리운 밤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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