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같은 사람,

나도 웃고, 우산도 웃었다.

by 김봉근

갑작스러운 비. 기상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확신으로 변했다. 우산 좀 미리 챙겨 둘 걸 하는 후회는 한숨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일단 허공에 손을 뻗어 비의 양을 가늠했다. 뭐 이 정도쯤은 맞아도 괜찮다 되뇌며 처음엔 버티고 길을 걷다가 머리가 흠뻑 젖은 채로 결국 우산을 샀다. 아, 이렇게 사고 쓰고 두고 잃어버려온 우산이 몇 개쯤이나 되려나 속으로 세어보다 피식 웃었다. 내가 봐도 너무 많다. 시내 곳곳에 우산을 맡겨두는 사물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우산들을 적절하게 나눠두고, 언제 어디서나 비가 오면 가장 가까운 우산 함으로 달려가면 되니까.


그렇게 또 하나의 우산이 나에게로 왔다. 꼭 필요할 때만 찾게 되는 우산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가 와야 (그것도 많이 와야) 그 고마움을 알아채는 내가 부끄러웠다. 도움이 필요할 때만 사람을 찾아 부탁하고 감사함을 평범하게 생각해 기억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힘들어지면 다시 기대하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내 모습을 반성하게 했다. 비에 젖은 눅눅한 옷을 벗어던지고 나니 그제야 고마운 얼굴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어찌 잊고 살았나. ‘우리’라는 단어를.


스스로 물었다. 나는 우산 같은 사람일까? 아니, 아직 멀었다. 그래도 언제가, 내가 누군가에게 우산 같은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평소에는 가만히 저 기억 밑에 숨어 있다가도 날이 흐려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꼭 필요로 할 때 더할 나위 없는 무언가가 되는 그런 사람, 적어도 비가 내려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보다는 나을 테니까 말이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힘차게 우산을 펼쳤다. 따뜻했다. 나도 웃고, 우산도 웃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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