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의 외로움, 소슬하지만 한결같음.
소주를 두 병쯤 먹고 보니, 더 재밌는 책이다. 시인들의 산문 모음집인데, 김수우 작가의 글 <클립>의 마지막 문단을 읽고 또 읽었다. 작가는 클립을 마주하고 성실함의 외로움을, 소슬하지만 한결같음을 만났다. 이런 세상은 내가 보고 싶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고, 이런 글은 스스로 쓰고 싶다고 써지는 것도 아님을 알았다. 앞으로 더 겸손해야지 다짐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지만, 내심 그 클립이 참 부러웠다. 평범하면서도 유용하고, 충실하고 신중한, 작은 역할에 신실한, 한결같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상 위에 클립이 놓여있다. 나를 보며 웃는 듯하다. 꼭. :D,
<김수우 작가 ‘클립’ 중에서>
클립은 무모한 반항도 허세도 영웅심도 없다. 그저 평범하면서도 유용하고 충실하고 신중하다. 작은 역할에 신실한, 그 반짝이는 혹은 오래 잊혀 퇴색된 클립은 살아가야할 바탕으로 내게 다가온다. 너무 사소하고 간단히 잊히지만 언제든지 무언가를 묶어내는 역할에는 한결같다. 그러면서 이 도구적 존재자의 성실함이 나에게 매번 확인시켜주는 것은 존재의 외로움과 외로움의 빛나는 단면이다. 쓸데없이 자존심이 상하거나 괜한 피해 의식으로 고통스러울 때 클립은 오히려 소슬한 목소리가 된다.
가지런히 모아준다는 것, 여며준다는 것은 새로운 미학이다. 산만한 것들을 제대로 존재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사물의 노동, 한마디로 그것은 단정하다. 한 번도 강조하지 않았고, 한 번도 그리워하지 않았고, 한 번도 절실하지 않았지만 종잇장을 묶어주는 클립들을 볼 때 나는 헤아리게 된다. 마음의 다발, 생각의 다발이 여며지는 것이다.
흐트러진 마음이나 사람의 관계에도 반짝이는 작은 클립이 있었으면 싶을 때가 많다. 생각이 복잡할 때도 마음의 클립을 생각한다. 내가 클립을 찾아낸 게 아니었다. 오늘도 클립은 뜻밖의 틈바구니에서 나를 찾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