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과 비움,

채우기 위해서는 비움이 먼저였던 것인데

by 김봉근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영원한 가객 김광석이 나에게 묻는다. ‘텅 빈 곳을 억지로 채우고, 무를 회피하려는 이유가 도대체 무얼까?’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의 저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이 나에게 묻는다. 무섭게 채우기만 했던 삶은 아니었는지. 비우는 것에 소홀한 인생은 아니었는지.


참 무기력한 요즘이었다. 감기 기운이 없는데도 괜히 몸이 으슬거렸다. 힘을 좀 내보자는 마음의 굳건한 외침마저 말을 들어먹지 않는 하루하루. 주말에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씻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가만히 방에만 누워 있다가는 몸 안에 버티고 있던 기운마저 이불과 바닥에 모두 흡수되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옷깃을 여미고,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2호선을 타고, 4호선을 갈아탔다가 9호선, 신분당선, 7호선 플랫홈을 차례로 밟았다. 그렇다고 아무런 목적 없이 돌아다닌 건 아니다. 가야만 했던 곳이 있었고,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었다. 또 꼭 만나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의 내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무와 의지가 내 양팔을 잡고 서로 당기는 듯했다. 그것도 아주 팽팽해서 중간에 있는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숨을 고르고, 사람의 인생이란 채우고 또 비우는 일의 끊임없는 반복이겠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빈 종이를 정답으로 채우고,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로 채우고, 노동을 위한 시간을 채우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저금통에 돈을 채우고, 지식으로 생각을 채우고, 잡다한 물건들과 생각들로 삶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허무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막연한 부담감을 또 다른 무엇인가로 채우려 하고 있었다.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밀어 넣었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움이 먼저였던 것인데 말이다.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꼭 채워야만 하는 것인지 다시 묻는다. 그리고 비워도 괜찮은지 생각해본 후에 하나하나 슬며시 버려봐야겠다. 허무와 의지의 사이에서, 몸도 맘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내일부터는, 무엇을 비우며 살고 있는지 묻는 하루하루가 되길. :D,


+덧, ‘모든 것에는 금이 가있고, 빛은 거기로 들어온다.’ 오늘 만난 최고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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