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수 있겠다 싶었다.
언젠가 걷기 좋아하는 후배에게 선물했던 책,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를 단숨에 읽어버렸다. 잡다한 생각에 시간을 주고 싶지 않기도 했고,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틈도 허락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잠이 덜 깬 채로 일어나 책을 펼쳤다. 울고 웃으며 함께 걸었다.
인생의 바닥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날 것 그대로의 고통과 외로움을 만난 후, 스스로 변해야만 했다.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 예전 본인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몸집의 두 배나 되는 괴물 같은 배낭을 메고 길을 걸었다. 길 위에서는 나와 어깨를 짓누르는 짐, 그것들이 전부였다. 다른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혼자였고 가끔은 혼자가 아니었지만 결국은 또 길 위에 홀로 서있어야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걷는 것 밖에 없어서 걸어야 했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걸음을 옮기는 일이 전부인 일상의 반복. 그 속에서 오롯이 만나게 되는 진짜 나의 모습들이 내일을 걷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잠깐씩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 전국을 내 발아래 놓고 싶었던 뜨거웠던 그 여름의 국토대장정, 군복과 군화가 땀에 절어도 물 한 모금에 행복했던 천리행군, 그리고 수십 번을 걸었지만 늘 새로움을 선물하는 지리산 종주길, 그 밖의 수많은 걸음들의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주마등처럼 휙휙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걷는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수 있겠다 싶었다. 아니라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임이란 짐을 어깨에 메고 눈앞에 놓인 길을 걷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무겁고 외롭고 힘들고 발톱이 빠지고 숨이 차 쓰러져도 앞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살아내야만 하는 각자의 인생을 말이다. 책에서 만난 길지 않은 응원의 한 문장이 나에게 그리고 내가 아는 모두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수첩에 꾹꾹 눌러 담았다. "아주 잘하고 있어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당신은 초보일지 몰라도 아주 강해요.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그거니까요. 지금 당신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말자. 이미 잘 하고 있으니. 그래도 온 힘을 다해 걷자, 그리고 살자.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