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 속 주인공 요조가 나락의 끝자락에 서서 말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나는 눈동자에 힘을 풀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 창문을 휙휙 스쳐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 맨 마지막 일곱 글자를 되새김질하듯 뱉었다가 삼켰다. 지나갈 뿐입니다. 지나갈 뿐입니다. 괜한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저 지나갈 뿐인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지나감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다리에 힘도 풀렸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열차는 여전히 힘차게 달리다가 잠시 멈췄고, 사람들을 태우고 또다시 달렸다. 늦은 저녁이었다. 사람들을 피해 문 옆에 기대섰다. 어느 역에선가 동그란 역 간판이 눈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다시금 눈에 힘을 주고는 세 글자로 된 역 이름을 지우고 외로움이라 새 이름을 채워 넣었다. (사실 그렇게 외롭진 않은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오늘, 외로움역의 어디 즘을 지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 역은 괴로움역일 수도 있고, 그다음은 기쁨역, 슬픔역, 걱정역, 행복역이 차례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렴 좋다. 모두 지나갈 것이니까. 내가 오늘 탄 열차처럼 그저 가다 서다를 반복하겠지. 안 좋은 생각들을 슬쩍 열차 안 구석에 내려 두었다. 문이 열려 밖으로 힘차게 걸어 나오면서 다짐했다. 무엇이든 지레 걱정하지는 말자고.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금방 흘러가기 마련이라고.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