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보겠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by 김봉근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속 주인공 뫼르소의 독백인데, 일요일 저녁에 만난 문장 치고는 무척 괜찮다 싶었다. 마음에 들었다. 결국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은근슬쩍 흘러가는 일요일 시간 속에 내가 서있다. 짧게 나누어진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일 앞에 있는 월화수목금토일 글자를 달력에서 슬쩍 지워버리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은 그냥 요일의 하루들일 텐데 생각했다. 결국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 우리 삶을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시작과 끝만이 있을 뿐, 인생의 중간을 채우는 요일이나 시간의 구분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온몸을 휘감을 뻔했는데, 어제 마신 맥주와 오늘 마신 맥주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마음이 아주 조금은 가벼워졌다. (어제는 하얼빈을, 오늘은 클라우드를 마셨다. 참 다행이다. 무겁게 생각해 뭐 하겠나.) 오늘 읽은 책과 내일 읽을 책이 또 같지 않듯이, 무언가를 위해 살았던 오늘의 나와,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 살아갈 내일의 나는 같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보겠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창문을 열고 까만 하늘을 쓱 한번 올려 보았다. 새로운 하루를 기다리는 깊은 밤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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