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산부인과에서 조직검사(생검) 결과를 듣기로 한 날. 전날 자궁경부암세포검사에서 ‘반응성 세포 변화’라는 결과지가 문자로 온 터라 추가로 했던 조직검사도 불안함은 있었지만 염증? 아니면 중년이니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간단한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나오길 바라고 기다렸던 것 같다.
생리 후 며칠 갈색냉이 보이는 정도였고
생리가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 것이 최근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마침 새해 자궁경부암 검사 대상자라서 겸사
산부인과를 찾은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질출혈인지 배란혈인지 구분하려면
질초음파와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출산 이후 처음 받는 질초음파로 약간 긴장이 되긴 했지만 증상이 미약해 괜찮을 거란 마음이 컸다. 그런데 보자마자 용종이 보인다며 바로 제거해 준다고 했다. 이거 때문에 출혈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그때부터 겁을 먹은 나는 굴욕의자에서 다리를 벌벌 떨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너무 많이 떤다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이어서 초음파 화면에 비정상적인 둥근 조직이 보였다. 선생님은 이 부분을 일부 채취해 조직검사를 보내자고 하셨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3일 내내 불편했지만 내심 아직 40대란 믿음 같은 것이 나를 지탱해 주는 듯했다.
오전 9시 첫 타임 예약을 잡아두고 일찍 병원에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 들렀다. 평소와 다름없이 모닝커피를 마시고 잠시 외출 나온 것 마냥 평범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창문 밖으로 오가는 여성들을 보면 어김없이 그녀들의 자궁이 궁금해졌다.
‘담배 문 저 예쁜 언니는 산부인과 정기검진 잘 받고 다닐까? 질초음파까지 꼼꼼히 보나?’ 이 생각에 깊이 빠지다 보면 순간 멈짓하기도 한다.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대뜸 자궁은 안녕하신가요?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 같아서.
예약 시간 5분 전, 남은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여유 있는 척 병원을 향해 갔다. 1층 로비에서 마침 원장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사실 어제 늦게라도 결과 설명 듣고 싶어 올 뻔했다고 웃으며 (내가 웃고 얘기하면 원장님이 걱정할 수준 아닌데 자세한 건 가서 설명해 드릴게요.. 할 줄 알았다)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인사했다. 원장님은 결과지 봤다면서도 내가 기대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손에 들린 커피가 무안하고 이럴 때가 아닌가? 싶은 약간의 공포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들어선 나는 진료준비에 나서는 간호사들의 경쾌한 웃음소리와 발걸음을 배경 삼아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과연 진료실에서 나올 때 나도 같이 웃을 수 있을까? 그렇게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원장님은 곧바로 영문 결과를 읽어주시며 이건 자궁내막암이란 뜻이라고 말했다.
“암이요? 암??”
결론은 “큰 병원 가서 잘 치료받으세요.
검진을 자주 했더라면 암까지 가기 전에
발견했을 텐데…“
자궁 내막에 암조직이 검출됐다는 조직검사 결과지가
모니터에 응급으로 떠 있었다. 순간 블로그에서 혹시 몰라 찾아봤던 암 투병기들이 마구 뒤섞이며 이 시간이 진짜인지 멍해졌다. 평범한 어느 날에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날 나는 집에 들어가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