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by 샬롬




멋진 호텔처럼 가운데 공간이 뻥 뚫려있고, 높은 천장으로부터 환한 빛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그 건물이 고져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Y는 그러한 구조의 아파트에 살아보고 알았다. 중심이 비었기에 미음자로 배치된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를 내려 열린 공간을 오른쪽에 끼고 역시 미음자로 연결되는 통로를 지나야 했는데 많은 세대가 공유함에도 복도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 하긴 어떤 이웃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도 슬며시 닫힘 버튼을 누르는 성정을 가졌으니까. 그런 유형의 주민은 볼 일 있어 집 문을 열고 나오다가도 외부서 인기척을 느끼면 출발을 지연하며 마주침을 회피할지 모른다. 실제로 Y는 몇 걸음이면 승강기에 도착하는데도 바쁜 척, 못 본 척 면전에서 문이 닫히는 경험을 서너 번 했다. 처음에는 그 예절 없음이 불쾌했지만 솔직히 그녀 역시 타인과 밀폐된 공간을 셰어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금세 개의치 않게 됐다. 들은 이야기인데 그 고장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자신이 사는 층을 감추기 위해 고의로 엉뚱한 층의 숫자를 누르고 내린다는 설도 있었다.



Y의 집은 코너에 위치해 있어 또각또각 구두 소리 울리며 조용한 복도를 걷다 보면 굳이 바닥을 내려다보지 않는 한 난간의 안전 펜스 너머로 이웃집 전경들이 일목에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Y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암만 대문을 닫아걸고 새침한 척해봐도 해결 안 되는 수납공간 부족에서 오는 살림살이들이 문밖에 방치되었기에, 각 세대가 아무리 나름대로 단정히 꾸려 내놨다 한들 한눈에 보여지는 아파트 분위기는 중구난방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주거지는 자신 삶의 얼굴이자 결산이라고 생각했던 Y에겐 중산층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어쭙잖은 그 광경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물 중심이 오픈된 특성상 과다하게 노출되는 전체 모양새는 과장을 좀 하자면 어릴 적 엄마 손잡고 따라가서 보았던 재래시장의 닭장을 연상시켰다. 규격화된 비좁은 닭장의 촘촘한 마름모꼴 철망 안에는 성년의 닭들이 생명의 날개 짓하며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몇몇은 멍청하니 대개는 겁에 질려, 꼬꼬댁 꼬꼬~ 그 울부짖음, 희망 없는 몸부림!



평소 속을 안 보여주는 마을 사람들이라 정이 안 간다고 타박을 하다가도 가끔은 그들이 가엾게 여겨질 때가 있는데 바로 이웃에 폐 안 끼치려 숨죽인 모습, 자신의 본성과 상관없이 눌려있는 그들을 접할 때이다. 언젠가 그 고장 전역에 꽤 큰 지진이 감지되었을 때 피해 지역 주민들은 여진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했었다. Y가 살던 바로 그곳은 아니었기에 Y는 티브이로 긴급 전송되는 지진 관련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화면은 이불 한 채씩을 배당받고 촘촘히 강당을 메운 어지러운 모습을 비추어주고 화들짝 놀란 젊은 여자의 지진 체험을 인터뷰 중이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아직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여자는 너무 무서웠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곤 곧 “미안합니다” 하며 표정을 수습하였다. Y는 어리둥절해졌다. 저 상황에 뭐가 미안하지? 놀람과 슬픔을 표현해서? 정직한 자기 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줘서? 생의 위기의 순간마저 감정을 컨트롤해야 하는 강압적 교육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켜보는 마음이 참 그랬다. 자신의 발소리 외에 정적이 감도는 아파트 복도를 지나며 Y는 둘 곳 없어 집 밖으로 내몰린 생필품들, 어느 순간 기쁨이었을 유모차나 세 발 자전거, 눈 많은 동절기에 요긴하게 쓰였을 스페어타이어 등이 투명 비닐에 결박당해 있는 모습에서 주인의 신음을 읽었다. 속상하면 바로 아우성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온 Y에겐 조그만 체구에 담담한 얼굴들 뒤로 이중 삼중으로 조여 오는 관습의 속박이 무겁고 답답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주거공간에서 왜 한가운데를 비우는 여유를 부렸는지? 맑은 날, 빛 좋은 광선이 공기 중의 미세 먼지를 유독 드러내듯이, 괜찮은 줄 알았던 피부의 실핏줄이며 뾰루지가 볕 좋은 거울 안에서 더 부각되듯이 건축가의 야심작은 기쁨이 되지 못하고 주민들의 민낯을 불필요하게 노출시켰다.



이윽고 Y는 집에 도착했다. 승강기에서부터 그리 긴 거리가 아님에도 거주지 특성상 이웃집을 조망하며 그녀는 잠시 상념에 잠겼던 것이다. 그녀 집 앞에는 이례적으로 작은 화단이 있다. 그러니까 그녀가 투덜대던 구조 덕택에 그녀 아파트를 하우스 인양 착각하게 도와주는 쁘띠 화단의 나무들은 꽤 넉넉한 햇살과 공기를 공급받아 실내에서도 건강한 초록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중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모양 잡힌 나무 한 그루가 대문가에서 자태를 뽐낸다. 풍성하고 윤기 나는 진초록 잎사귀들 사이로 아름다운 붉은 꽃들이 보석처럼 피어있다. 칠흑 머리에 검붉은 루주를 바른 탱고 무희처럼 진초록에 대비되는 빨강은 여느 빨강이 아니다. 진정한 레드, 블러드 레드다. Y네는 딴 세상이다. 단지 내 넓은 평수에 부부 단둘이 사는 집에는 정기적으로 돌보미가 와서 일을 거들고 화단 물 주기도 Y의 영역이 아니다. Y는 그저 손님을 초대하곤 식탁 장식을 위해 가끔 문 열고 나와 작은 병에 맞춤으로 들어갈 적당한 길이의 상태 좋은 꽃망울을 잎사귀 채 잘라 꽂아두곤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그게 동백나무임을, 동백꽃이 장미보다 예쁨을.



Y는 최근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왜 그래? 나한테 이러지 말어. 나를 울게 하지 말라고...” 고아처럼 자라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미혼모 주인공이 청년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으며 우는 장면이다. 아까운 시간, 드라마에 얽히기 싫다고 거절하다 지인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한 자리에서 보게 된 연속극, 처음엔 건성으로 보는 척하다 안경을 찾아 끼었고 종내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것 같은데 감정이입이 되며 동백과 관련된 추억들이 되살아나고 Y는 갑자기 한 번도 보듬어 주지 않으면서 수없이 동강 냈던 동백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다른 꽃들처럼 한 풀 한 풀 시들지 않고 끝까지 대차게 뭉쳐있다 봉우리 채 떨어져, 죽어서까지 식탁 장식을 소소히 수행하던... Y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미안합니다’ 하며 감정을 추스르던 여인을 동백에서 읽는다. 이제 Y도 복잡해졌다. 그런 거야 인생은. 결코 느긋하게 웃거나 마음 풀고 울어 버리기엔 너무 모진 거야. 생각해보니 Y는 자신이야 말로 많은 것에 구속되고 부자연스러웠음을 자인한다. 그 어떤 즐거운 일이 생겨도 환하게 웃지 못하고 겸손한 척 골방에 숨어들었다.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신에게 대입시켰다. 그녀 손이 동백을 따는 순간 그녀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도드라지면 베임 당하는 거야, 지나치게 몸 사렸다. 돈 자루의 돈다발을 바다에 내던지는 ‘아다다’나 주어진 행복을 제대로 못 누리는 우리나 백치이긴 마찬가지인 것 같아, 안 그려?

이전 14화노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