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작가 Aug 20. 2023

여행의 끝자락에서

퇴사 전 홋카이도 여행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어제의 맑은 날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세차게 비가 내렸다. 우리는 간단하게 조식을 먹은 뒤 캐리어를 끌며 비바람을 뚫고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여행 중에 비가 왔지만 기분이 나쁘기보단 마지막 여행지가 온천 호텔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비가 거세게 오는 날과 상관없이 온천 호텔은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나는 그런 시간을 좋아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관공서가 있어서 잠시 비를 피해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관공서를 드나드는 주민들을 보았다.


조금 신기했던 점은 홋카이도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산 대신 후드가 달린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는데 10명 중 8~9명 정도가 바람막이를 입고 있는 걸 봐서는 문화적인 특징인 것 같았다.  


아마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우산을 들고 다니기보다는 간단하게 후드가 달린 바람막이를 애용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근거는 여행 동안 날씨가 변덕스러웠고 영국도 날씨가 변덕스러운 편인데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홋카이도도 같은 섬이어서 기후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도착한 버스를 타고 마지막 여행지인 온천 호텔로 향했다. 도착한 호텔에서 가볍게 짐을 풀고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다. 온천은 생각보다 칼로리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든든하게 식사를 한 뒤 들어가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온천에서 하루는 좋았다. 밖은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온천은 평화로웠고 사람이 거의 없는 덕분에 고요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온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평상시의 나는 스마트폰 중독이라 끊임없이 자극적인 것들에 노출되어 있는데 온천의 경우 스마트폰을 강제로 사용할 수 없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게다가 일행과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인 것 같다. 특히 이번 여행은 퇴사에 대한 고민을 품고 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혼자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남자 대욕탕 사진(호텔 홈페이지 제공)

당연히 목욕탕 내부에 스마트폰을 들고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사진을 추가한다.


사진처럼 날씨가 맑지는 않았지만 지옥 계곡을 멍하니 바라보며 즐기는 온천욕은 기분이 좋았다. 사람도 거의 없어서 목욕탕을 전세 낸 것처럼 여행의 고요함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안정된 직장에서 떠남을 원하는 건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내 능력에 비해 현재 회사는 괜찮은 회사였고 좋은 점들이 많았던 회사였다.  


물론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무의미한 업무와 적은 인원의 팀으로 처리해야 하는 많은 양의 일,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와 같은 부분들은 당연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요소 때문에 회사에 가기 싫은 건 공부하기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퇴사를 하더라도, 또 다른 좋은 기업을 가더라도 불만이 없는 회사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회사에서 유토피아를 찾아봤자 큰 의미는 없는 법이었다. 퇴사는 해결책이 아니었다.  


나는 무의미한 일 속에서도 나는 소소한 의미를 찾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많은 일 때문에 힘들어도 그걸 통해 조금씩은 성장하고 있었고 그건 내가 버틸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난 항상 불안감과 조급함을 지니고 있었다. 급격히 올라가는 생활 물가, 밥값은 가장 싼 음식들이 만 원이 넘었고, 가스비, 전기세 등등 월급 말고는 모든 것들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해결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이 끝나서 곡물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더라도, 미국 금리가 떨어지더라도,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만 보였다.


AI의 등장으로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고 불확실성의 미래에서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폭발적인 성장이 필요했다.


나는 스스로가 끓는 물속의 개구리인 것 같았다.

사진 출처 : Burce Power Direct

냄비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몇 가지 고민이 해결되어야 했다.


1.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정말 끓는 물속인가?

2. 회사 밖은 더한 지옥이 존재하지 않을까? 회사 없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 정말로 내 선택이 옳은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한 답을 여행을 통해 찾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홋카이도의 숨겨진 보석, 세상 일이란 모를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