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홋카이도 여행
삿포로 여행을 마무리하고 가게 된 다음 여행지는 시라오이라는 아주 작은 소도시였다. 시라오이에 숙소를 잡게 된 이유는 조금 특이한데 이번 6박 7일의 여행을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MBTI가 J인 어머니가 숙소를 전부 예약했는데 다음 숙소인 온천 숙소가 다소 비싸서 비교적 가까운 소도시에 예약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가까운 줄 알았던 소도시가 온천과 교통편이 있는지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시골에 거리도 멀었다는 점을 그 전날 삿포로에서 깨달았다는 점이다. 아주 망한 셈이다.
그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미 호텔은 예약했고 우리는 삿포로를 떠나 시라오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시라오이로 출발하기 전날 삿포로 시의 호텔에서 시라오이는 어떤 걸로 유명한 관광지인지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는데 놀라운 점은 아무런 관광지가 검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 가족 모두 이런 곳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라고 걱정이 가득했다.
그렇게 도착한 시라오이는 생각과 다르게 너무 좋았다.
삿포로 시는 대도시라 그런지 일본스러운 느낌보다는 서울이랑 크게 다른 게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시라오이는 소도시라 일본스러운 느낌이 좋았다. 자그마한 역은 마치 애니메이션 같았고 날씨가 좋아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다.
낮은 건물 사이로 수다를 떨며 호텔로 향했다.
시라오이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예약한 호텔이 게스트하우스라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미리 그걸 알고 자전거를 빌려서 주변을 돌아다닐 계획을 세웠었고 그렇게 근처 관광지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려 했으나 문제는 어머니랑 동생이 자전거를 못 타더라. ^^...
어머니는 너무 예전에 조금 타봤던 거라서 다시 타려고 하니 도저히 타고 다닐 수준이 못됐고 동생도 똑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 계획은 시작부터 박살 났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주변에 자전거를 연습할 만한 공터가 있는지 탐색을 했다. 다행히 비교적 근처에 공터가 있었고 거기서 자전거를 연습하기로 했다. 동생과 어머니는 갑자기 한국도 아니고 일본의 홋카이도에서 자전거를 배우게 된 셈이다. 진짜 어이가 없다. ^^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배웠다. 그때 하도 넘어져서 온몸에 상처를 달고 배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스스로는 자전거를 못 타면서 나보고는 자전거를 타게 시켰던 진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머나먼 홋카이도에서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게 되었으니 세상 일이란 모르는 법이다.
다행히 감이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3시간 동안 수련을 통해 조금은 실력이 늘어 둘이 공터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멀리서 구경했다.
그렇게 한동안 자전거를 연습했지만 실력을 고려했을 때 도저히 차가 다니는 위험한 도로를 지나 목적했던 바닷가 근처 관광지로 갈 수준은 안되겠다고 판단이 들었고 자전거를 배우느라 체력도 떨어져서 저녁 5시 반이라는 이른 시간에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올 때는 차도여서 자전거를 끌면서 왔다 ^^)
그렇게 잠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쉬고 있는데 조금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여행을 왔는데 아무것도 못 보고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생각을 하다가 점심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포기했던 호수를 한 번 가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관광지에 나오지도 않는 아무도 모르는 호수였지만 그래도 가는 길이 자전거 도로로 잘 되어 있어서 부족한 실력으로도 충분히 가볼 만할 것 같았고 어차피 근처에는 할 것도 없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었다.
구글 맵에 아무런 후기도 없는 곳이라 실망만 있을 거라고 걱정했는데 지금까지 홋카이도 여행지 중에서 가장 좋았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 속에서 몽환적인 호수 풍경이 너무 좋았다.
호수를 보면서 참 세상 일이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홋카이도를 여행하면서 갑자기 자전거를 배우게 되고 아무것도 없는 소도시를 여행하면서 기대 없이 걱정만 가득했는데 이런 풍경을 보며 가장 만족스러운 하루가 될 것이란 걸 예상할까?
결국 여행은 일단 저질러 보자는 것들이 쌓이면 또 어떻게든 되는 법인 것 같다. 멀쩡한 직장. 허접한 능력. 안정적인 생활. 나름대로 보장된 미래. 그런 인생도 나름대로 행복하겠지만 또 무데뽀로 살아가는 것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물론 지금 퇴사했다가는 인생 망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여전하다. 한국은 실패에 민감해서 한 번이라도 인생에서 낙오된 순간 되돌아오기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라는 말처럼 그럼에도 나는 변하고 싶었다.
여긴 숙소 바로 뒤편 음식점. 가격이 착하고 홋카이도 여행 중 가장 맛있었다.(객관적으로 안 짜고 진짜 맛있었다.) 地栄の和 라고 구글 맵에 검색하면 나온다. 시라오이에 가게 되면 강력 추천한다. ^^ 글 내용과 상관없지만 진짜 맛집이기 때문에 추가한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