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처음에는 포트폴리오 목적으로 시작한 이 공간에 내 개인적이고 나약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망설여진다. 솔직해도 좋을까? 하는. 그렇지만 대부분의 장면에서 솔직할 수 없는 내가 중학교 때 네이버 블로그가 그랬듯이 이곳에나마, 어차피 큰 반향이 없을 개인적인 글 공간에서나마 솔직함으로 조금은 숨이 트이는 경험을 하고 싶다.
자격증을 취득하고서 유료상담을 시작한 후 지도교수님의 제안으로 상담료를 업계에서 아주 낮은 수준으로 책정하기도 했지만, 나와 초 장기 회기를 유지하고 있는 내담자들을 생각할 때 나는 부끄럽고 또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사실 나의 상담 요령은 적당한 거리두기에 가깝다. 내담자의 문제에 감정적으로 빠져들지 않고 내담자에게 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기억력이 좋은 것이 나의 강점이고, 나는 매 회기를 시작하기 전 지난 상담회기를 잠시 복기한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이어 잡아가면 좋을까. 오늘 내담자가 물어봐주었으면 하는 포인트는 뭐가 될 수 있을까. 적중률이 6할은 되기에 우리가 개업한지 10개월이 다 되가는 이 시점에서 나와 첫 상담을 시작했던 내담자들이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것일 거라고 추론건대 약간 자긍심을 느낀다.
대다수 상담자 공통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상담을 하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반영적으로 본다.
내담자의 어떤 면은 나와 닮아 있기도, 나와 가까운 혹은 가까웠던 사람들의 일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담자가 소비자로서 자유롭게 내 앞에서 울고 웃고 나아지고 뒷걸음질 칠 때, 어느 날은 상담을 마치고 나면 긴 여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나는 어딘가 비어 있고 끝없이 외로워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두텁고 종속적인 관계를 찾아 갈급해 했지만, 아직까지 도무지 잘 해내지 못했다.
관계 능력이 빈약한 사람이 상담을 한다는 건 어쩌면 매우 아이러니한 일일 것이다. 내담자들이 가져오는 호소문제의 많은 변량을 관계가 설명한다.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서, 원하는 바를 요구하지 못하거나 거절하지 못해서, 역할 갈등으로 인해 등등. 내담자들의 우울과 불안은 특정 사건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관계 체계에서 온다. 나는 그들과 문제 상황을 함께 바라보면서 이론적으로 알맞다고 판단되는 유용한 관계 기술들을 교육한다. 감정을 반영해주고 공감하는 마음을 전달하면, 자아강도가 뒷받침되는 내담자 대부분은 일상으로 돌아가 내가 추천한 무언가라도 하고 돌아온다. 적극적으로 권하고, 리뷰하고, 조정하는 지식 전승의 과정 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내담자들에게 상당 수준 도움이 되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로써 그들에게 힘이자 어느 날엔 실패하더라도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있는 '처'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우는 내담자를 버티고서 귀가하는 어떤 날에는 나 자신이 정말 별 거 아닌 것에 쉽게 눈물이 터져버린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라곤 한다. 나는 일을 위해 상담을 멈출 수 없고, 지친 심신으로 상담 활동을 지속한다는 건 어쩌면 상담자의 윤리에 반하는 일일 지 모르겠으나 평소 상태의 나와 상담자의 자리에 있는 나를 분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공허한 상태로 끝없이 외로워하고, 그럼에도 관계를 잘 맺지 못해서 사실 요즘의 나는 대 방황기다.
살면서 정말 내내 좋을 것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것을 내내 소중하게 여겨본 적 있는지도. 누군가의 마음을 오롯이 받은 적이 있는지, 또 그것이 소중한 줄 알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자기'는 없고 할 일만 가득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저 남들이 훌륭하다고 봐주는 길에서 언제나 아침에 눈을 뜨면 당장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것들을 순서대로 해치우면서 살다가 서른을 넘겼다.
어떤 모토로 살아야 하지? 나아가서, 어떤 모토로 살아가고 싶지? 이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표면적으로 좋게 말하자면 나는 열심히 사는 것에 비해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내면적으로는 가치 체게가 비어 있는 채로 시간을 죽이다보니 하루하루 분주한데 의미 있는 경험들로 채워지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내적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자잘한 선택과 경험 안에서 통합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심리학의 대가들이 말하기를 타인에게 세계관을 전수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
나는 어디서부터 놓친 길을 추스를 수 있을까?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내담자들을 돕듯이 나에게도 도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