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길을 뚫고 지나서 지하철로 들어왔다. 아침 지하철이라 자리가 많이 있었다. 서둘러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뒤에, 여유가 생겨 앞을 보았다. 함께 온 중년의 남성 둘과 여성 둘은 한 줄을 다 차지하고 앉았다. 처음에는 남여남여 순서로 자리를 잡으려고 하다가, 나이가 더 적은 여자가 다른 여자를 툭 치면서 말했다.
“언니, 왜 자꾸 여자인 걸 잊어.”
하며 말하고서 여자끼리 붙어 앉자고 했다. 언니에 해당하는 사람은, “내가 여자였나.”하고 털털하게 말하면서 동생 옆에 붙어 앉았다. 허겁지겁 자리를 잡아서인지, 동생에 해당하는 여자의 묵직한 가방이 쿵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그 여자는 3초가 안 지났지, 하면서 가방을 다시 주웠다.
젊은 언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쳐서 잠시 이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일 때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생활을 했을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의 외모가 변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여전히 마음은 어릴 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그리워서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어느 한 순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걸 여러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때의 마음을 간직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려고 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 시절이 모두 지나가고 어른으로서 진지하고 근엄하게 행동해야만 하는 건 아쉬운 일이겠지.
우리나라에는 나이든 사람을 혐오하는 정서가 점점 생기는 것 같다. 50년 100년 전으로 가면 효 사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요즘에는 제사도 잘 지내지 않고 나이든 사람을 조롱하는 영포티 같은 단어가 유행한다. 나이는 모두 들 텐데, 왜 그렇게 자신보다 나이든 사람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걸 쉽게 하는 걸까.
나는 대학을 다닐 때 휴학을 오래 하고 학교를 늦게까지 다녀서인지 사람들을 만나면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젊고 생기있다고 생각하며 나를 좋게 보지 않았다. 나이가 많으니 조급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서슴없이 하고, 자신들이 어린 걸 우월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사람들과 더는 만나지 않지만 나는 아무래도 대학가에서 사람들이 나이에 갖는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고학번을 쉽게 화석이라고 부르고 3학년만 되어도 22살 어린 나이인데 선배라고 부르며 성숙하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이런 감정은 대학가에서만 심한 게 아니고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하다. 노인들을 챙기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제사는 과거의 유물이 되고 있으며 부모님조차 모시기 싫어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도 이런 게 보기싫은 걸 보면 옛사람인가 싶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무슨 대단한 걸 갖고 있나 싶다. 젊은 것 하나밖에 갖지 못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여러가지로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경제 생활도 잘 안되니까, 건실하게 살고 있고 자신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을 놀리면서 쾌감을 얻는지도 모른다.
나는 영포티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는데, 40대가 넘어서도 어리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어린 사람들이 쓰는 제품을 사용하고 마음도 젊은 사람들을 영포티라고 부르며 비하하고 면박을 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40대가 될 텐데, 영원히 어린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나이가 많은 걸 열등하게 보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오늘 지하철 앞에 앉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젊은 마음에 애틋하기도 하고 외모와 상관없이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 활기를 가진 것만으로도 멋있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드는 게 두려워서 자꾸 조롱과 비하를 일삼는 것 같지만, 그런 화살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젊은 걸 무기로 내세우려고 하니 어리석어 보이기만 할 뿐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마음까지 늙어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리워하는 마음, 그 때의 그 자세로 살아도 괜찮다. 좋은 사람은 착한 마음을 알아보고, 선한 사람은 그들의 젊은 마음을 청춘이라고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