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주위로 눈이 내릴 때

by 신하연

눈이 내릴 때 가로등 빛을 받으면, 황금으로 빛날 때가 있다. 겨울의 가로등은 여름 가로등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추위를 견디는 것 같기도 하고, 쇠로 되어 있어서 그 추위조차 모르고 무심하게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겨울의 가로등을 보면 나는 어둠이 더 짙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히 빛을 내고 있는데 스스로의 힘은 줄어 들고 있는 양초처럼, 가로등도 온몸을 불살라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을텐데, 전기로 힘을 받아서 별 힘들이지 않고 빛을 낼 수 있을텐데. 그런데도 가로등은 유난히 쓸쓸하고 고독해 보인다.

그런 가로등이 가장 아름다워보일 땐, 눈이 내릴 때다. 자신을 비추는 게 아니라 눈을 비추면서 가로등은 아주 환하게 변한다. 가로등 주위로 내리는 눈은 황금색으로 물이 들고, 가로등도 그런 힘을 이제야 드러낸다는 듯 더욱 찬란하게 빛을 쏘인다. 겨울 눈, 겨울 가로등 그리고 겨울의 빛.

빛으로 무르익은 눈송이들이, 움직이면서 살아있는 것 같고 그러다가 또 얼굴로 쏟아져내리면 무섭기도 하다. 그런데도 눈을 뜨고 싶고, 하늘에서 얼굴로 와락 덤벼드는 눈송이들을 견뎌내고 싶다. 그렇게 가로등 아래서 서 있으면 눈은 겨울 냄새를 멀리서부터 싣고 온다. 눈에는 가로등 빛이 묻어 있고, 차가운 향기도 스며들어 있고, 먼 구름에서부터 품고 있는 세상의 때도 가득하다. 아름다운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인데, 그래서 눈도 이렇게 많은 걸 품었다가 사라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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