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을 내딛다

by 신하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았다. 내가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느리고 고요한 감정이었다. 주인공 가후쿠는 슬픔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의 감정을 슬픔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가후쿠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고, 그 아내가 죽었고, 가후쿠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후쿠가 느끼는 슬픔은 사라지지도 않고 옅어지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후쿠가 슬픔을 내보내려고 할 때조차 눈이 많이 내려서 감정이 소복소복 덮였던 것 같다. 그렇게 그는 슬픔을 완전히 내보내지 못하였다.

가후쿠는 비슷하게 슬픔을 안고 사는 미사키를 만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미사키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를 타고, 미사키가 어머니에게 갖는 감정을 자신이 아내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미사키 역시 슬픔을 터뜨리지 않는다. 평생 안고 사는 감정들, 두 인물은 언어로 소통하는 대신 서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내버려두는 것으로 서로에게 위로를 전한다.

가후쿠는 연극배우이다. 감정 연기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가후쿠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맞는 대사를 연습한다. 가후쿠는 자신의 감정과 말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말과 대사를 통해 감정을 넌지시 드러낸다. 그에게 연극일은 그의 감정을 헤아리고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나는 가후쿠의 생활 방식에 공감이 되었다. 직업은 나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한다.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나도 편안하게 느낀다. 나 자신의 날것 그대로의 본모습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어려울 때가 많은데, 직업은 나를 한꺼풀 가려주고 적절한 사람으로 사회에 들어가게 해준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나 자신이 부적절한 사람 같을 때가 많은데 직업 속에 있으면 내 모든 감정을 드러낼 필요도 없고 일처리를 하다 보면 내가 적절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 직업은 나에게 자유 시간을 많이 주는 편이고 그런 시간에 나는 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한동안 그런 자유 시간이 괴롭게 느껴졌다. 직업적인 일을 할 때면 안정적이고 생각이 단순해지는데, 그렇지 못할 때의 시간을 견디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이젠 용기가 난다. 내가 내 자유시간에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글이 쓰고 싶고, 글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글로서 내가 가진 것들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도자기 만들기, 노래하기, 춤추고 연기하기 일 수도 있겠다.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도 정체기는 겪었을 것이고 힘든 시기, 잘 안 되는 시간도 겪었을 것 같다. 그런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나면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내가 지나온 한동안도 그런 성장과 성숙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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