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는 데이트

by 신하연

엄마가 아침에 치즈가 어디 있냐고 물으셨다. 내가 냉장고를 열면서 여동생이 치즈를 사왔다고 말했는데 엄마가 드시고 싶으셨나보다.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밖에 없어서 엄마는 아쉬운 듯이 말씀하셨다. 나는 남자친구를 12시에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전에 신세계 백화점에 들러서 외국 치즈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1시까지 준비가 끝났다. 버스를 타고 가면 얼추 가능할 것 같았다.

배드민턴 라켓과 농구공을 든 채로 신세계 백화점 안으로 들어왔다. 명품 화장품 매장 앞에서 화장품을 테스트해보는 여자가 보였고, 쇼핑백을 들고 우아하게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돈을 소비하면서 느낄 수 있는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화장을 깔끔하게 잘 하고, 붓기가 좀 빠져서 내 얼굴이 예쁘게 보였다. 이 백화점 안에서 나는 외모에 기대서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운동복을 입은 평범한 차림새로, 밝은 조명을 받으면서 나는 쾌적한 기분을 느끼면서 지하 식품관으로 이동했다. 치즈를 찾기 위해서 물건을 정리하는 직원 아주머니께 한번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치즈 코너로 직접 안내해 주시고는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안쪽 코너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치즈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다.

그곳으로 가자 아주머니 한 분이 치즈가 세일중이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이어폰을 뽑고, 치즈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둘러 보려고 하기 전에 아주머니는 세일이 들어간 치즈를 추천해 주셨고 나는 5천원짜리 치즈를 집었다. 에멘탈 치즈도 골랐다. 좀 더 고민하다가 집고 있던 5천원짜리를 비싸고 생유산균이 들어 있다는 브리 치즈로 교환했다. 계산하고 나오는 길까지 조명이 나를 길게 비춰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우리는 내가 오랫동안 먹고 싶었던 니뽕내뽕을 먹기로 했다. 나는 크뽕, 남자친구는 차뽕 그리고 에이드와 콘치즈 피자까지 주문했다. 콘치즈 피자를 내 크뽕에 있는 크림에 찍어 먹으면서 남자친구가 그렇게 먹을 수 있으니 좋구나, 하고 말했다. 초반에는 면이 너무 뜨거웠는데 식어갈수록 먹기도 편해지고 맛이 좋았다. 크림이 꾸덕하면서 부드러운 편이었고 쫀득한 면발과 잘 어울렸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사당종합체육관으로 배드민턴을 하러 갔다. 처음에는 가볍게 치면서 놀다가 내가 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남자친구에게 하이클리어를 치는 법을 알려주었다. 공이 몸 앞에 있을 수 있도록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몸에 힘이 붙어서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면서 잘 칠 수 있었다. 내가 힘이 들어서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남자친구는 묵묵히 같이 쳐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남자친구는 진작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내가 주장해서 같이 쳐주었지만 수술했던 무릎이 좋지 않다고 했다. 걸을 때 조금 불편해 하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이 미안했다. 내가 얼마나 배려 없이 행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미안했다. 남자친구가 하는 말을 좀 더 귀담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우리는 해방촌으로 갔다. 잠깐 집에 들러서 치마와 블라우스로 갈아 입은 뒤에 역에서 만나서 같이 갔다. 숙대입구에 내려서 용산 02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서 올라갔다. 작은 마을 버스는 덜컹거리기도 많이 했지만 좁은 길을 빠르게 운전해서 잘 올라갔다. 내려서 신흥시장이라고 써 있는 골목길에 들어가서 여러 가게를 구경했다. 팁시 타코를 가려고 했는데 웨이팅이 꽤 길어서 돌아다니다가 네이버스라는 가게로 들어갔다.

네이버스는 분위기가 참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창가에 앉아서 야경을 즐기며 우리는 라구파스타, 베이컨 구이, 스파클링 와인, 레드 와인을 주문했다. 나는 화려하고 어두운 조명을 바라보면서 해외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틀어놓은 음악도 듣기 좋았고, 와인이 나와서 함께 마셨다. 남자친구한테 와인을 돌릴 때 어떻게 하는지 배웠다. 바닥을 잡고 돌리는 것이었다. 향을 맡고 마시라고 했다. 스파클링 와인에서는 아주 연한 독소 같은 게 느껴졌고, 그게 향기로웠다. 그리고 맑은 청포도 향도 은은하게 났고, 그게 살짝 썩은 것 같은 맛도 났다. 청량하다고 하기에는 시큼한 것 같았지만 어른스럽고 몽환적으로 빠져드는 맛이었다.

베이컨을 구운 요리가 나왔다. 초록색으로 된 소스가 같이 나왔는데 안에 작은 양배추들이 가득 버무려져 있었다. 남자친구가 바질 페스토 향이 많이 난다고 했다. 나는 연기가 들어 있는 고소하게 구워진 맛을 느꼈고, 조그만한 양배추 사이로 가득 들어 있는 소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 양배추는 부드럽게 익어 있었는데 한 입 먹으면 과즙처럼 소스가 풍부하게 퍼져나와 입 안을 적셔 주었다. 고소하게 구운 마늘이나 고급스러운 버섯의 맛 같은 게 났다. 남자친구가 스테이크는 육즙이 있어서 먹으면서 조금씩 잘라 먹어야 하고, 이런 베이컨은 육즙이 별로 없어서 다 잘라놓고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어른스럽고 세련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멋진 남자친구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있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찬란하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어떻게 이렇게 편안하면서 화려한 행복을 손에 쥐고 있을까 하는 감동도 느껴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라구 파스타가 나왔는데 저번에 갔던 파브리 키친에서 먹은 것보다 더 좋았다. 브라타 치즈와 고기, 튀긴 마늘 플레이크 들이 가득 들어서 풍부한 맛이 났다. 고기에 저민 소스 맛도 좋았다.

이런 공간에 사랑하고 멋있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어서,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게 이렇게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진심 가득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모든 게 놀라웠다.

우리는 빈티지 샵에 가서 옷과 가방을 구경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여러 모자를 씌워 보면서 즐거워했고 새로운 옷도 시도해보라고 말해주었다. 깔끔한 오피스룩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트위드를 보고,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는 옷스타일이라고 말하며 나를 놀렸다. 귀부인 같은 거라고 했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옷이라고 하자 내가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같이 웃었다.

우리는 오이트 카페로 와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남자친구는 글에 집중하는 나를 차분하게 기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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